게임/잿빛의 버터플라이

잿빛의 버터플라이 3편

마루설아 2024. 12. 1. 22:14

[다이스케] : “이게 왜......!?”

 

왜.

왜 이런 게 있지.

내 방에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 바닥에 떨어져 있다......!잘못 볼 리가 없다.

토모에가 살해당했을 때, [주모자]가 주사기를 쥔 손에 끼고 있었던 검은 장갑이다!

 

도대체 어느새!? 내가 방에서 나갔을 때 분명히 이런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오늘 아침 중에 누군가가 이것을 여기에 두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니, 지금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이런 게 있다는 걸 누가 보게 된다면...... 애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어쨌든 숨겨둬야 한다고

그런 판단을 몇 초가 걸렸을지.

결론을 내리고 바로 당장에 검은 장갑을 주워 책상의 서랍에 감추었다.

무심코 그만 한숨을 내어 쉬려고 하는 바로 그 때.

 

[루나] : “다이스케?”

[다이스케] : “헉!!”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나는 문을 열어두고 있었던 것이다.

입구에는 루나가 서 있다.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루나] : “왜 그래, 다이스케?”

 

하필이면 가장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

고동이 빨라진다.

나는 [주모자]가 아니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 보았을 경우...... 지금 이런 나의 행동은 어떻게 비칠까?

 

[다이스케] : “아무 것도 아냐”

[다이스케] : “그러는 루나는 무슨 일이니?”

 

초조함과 긴장으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혀를 겨우 놀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인다.

 

[루나] : “나도 시간이 궁금해서”

[다이스케] : “그랬구나”

[루나] : “몇 신데?”

[다이스케] : “아, 그러니까......”

 

노트북의 액정을 켰다. 화면 우측 하단에 표시된 시간은 12시 5분이었다.

 

[다이스케] : “막 정오 지났어”

[루나] : “그렇구나”

[다이스케] : “밥 빨리 되면 좋겠네”

[루나] : “응. 밖에서 기다릴게”

 

루나가 문을 닫자, 방 안은 내 고동소리로 가득 찬 것만 같았다.

들키지 않았어......

그만 한숨이 터져 나온다.

당당하지 못할 짓을 하진 않았지만, 내 것이 아니라고 증명할 수도 없으니까......

그나저나 도대체 장갑을 여기에 둔 목적이 뭐지......?

아니, 생각할 것도 없이 뻔 하지 않은가.

토모에를 죽인 [주모자]가 내게 죄를 뒤집어씌울 셈이다!

 

[다이스케] : “빌어먹을!”

 

루나는 자신의 역할을 드러낸다는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수호자]와의 연계를 이루려 했다.

지금 상황에 있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서로의 신뢰관계. 그리고, 아무런 사건도 일어나지 않는 것.

여기서 내가 함정에 빠진다면......?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는 지금 모두를 중심에서 엮고 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모습이 전부 거짓이었던 것처럼 보인다면?

이 또한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안정된 지금의 상황은 순식간에 무너질 것이다.

내 안에서 의심이 부풀어 간다.

우리 중에 있는 [주모자]에 대한 의심.

그 녀석은 내가 잘 아는 모습을 하고서...... 악의에 가득 찬 미소를 띄우고 있을까?

 

큭, 그럴 리 없어!

분명 토모에를 해쳤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을 이길 수가 없어 혼란스러워서 그래서 모조리 없었던 일로 하기 위해 이런 짓을......

그래...... 분명히 그럴 거야.

패닉 상태에서 몇 번이고 생존 본능은 인간성이나 도덕심 따위 완전히 지워버리라고 말한다.

조난자가 동료를 죽여서 먹었다거나, 너무 가난해서 아이를 버린다거나......

그것은 자신과의 갈등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굽히고 마는 것을 그 누가 책망할 수 있을까? 자신은 결코 그러지 않으리라 말할 수 있을까?

결코 악의가 있지는 않을 것이다. 죽음의 공포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럴 것이다.

 

나는 믿어야 된다......

모두가 소중한 친구니까......

나는 잠시, 그렇게 홀로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

......

.........

 

더보기

[츠바사] : "이걸로 대충 400그램, OK......"

 

이제 슬슬 다이스케가 파랗게 질려 있을 때가 되었나.

그 녀석이니 그 정도는 흔들기 밖에 되지 않겠지.

오히려 폭주해서 전원 역할을 까발리게 하면 곤란하다.

지금은 어디까지나 의심의 씨앗을 뿌리는 걸로 충분하다. 주도권을 가진 녀석은 신중하게 다뤄야만 한다.

 

그럼......

나는 나 할 일이나 해야겠다.

참치 캔을 그릇에 비우면서 나는 접시를 닦고 있는 마이에게 말을 걸었다.

 

[츠바사] : "야~ 사실은 요리의 [요]자도 몰라서 거의 도움이 안 되는 마이 학생"

[마이] : "시...... 시끄럽네 참. 뭔데?"

[츠바사] : "재료가 좀 부족할 것 같거든. 미안한데 다른 방에 참치 캔이 있는지 좀 찾아 줄래?"

[마이] : "호오! 이 마이님을 부리려 하다니 배짱 한 번 든든한걸"

[츠바사] : "기껏 존재의의를 부여해주려고 하는데"

[마이] : "으우...... 알았어"

[츠바사] : "아, 기름기 뺀 걸로 좀 부탁해. 루나한테는 그게 좋을 것 같으니"

[마이] : "옛 서"

 

마이는 훌쩍 방을 나섰다.

그럼, 목적을 달성해 볼까.

등 뒤에서는 리리코의 식칼이 도마와 마주쳐 연주하는 기분 좋은 타음이 울리고 있다.

샐러드를 버무리던 손을 계속해 움직이며 나는 등을 마주한 채 별 기색 없이 말을 꺼냈다.

 

[츠바사] : "리리코. 잠깐 내 얘기 좀 들어볼래"

[리리코] : "네? 무슨 얘기죠?"

[츠바사] : "이거, 그냥 억측이니까 그냥 얘기나 들어 보라고. 아무한테는 말하지는 말고. 응?"

[리리코] : "예에 알았어요. 말해 봐요"

 

도마소리가 멈춘다. 손을 멈췄나. 그냥 흘려 듣는 게 좋겠지만 됐어.

 

[츠바사] : "루나가 [주모자]일 가능성은 없을까?"

[리리코] : "뭐? 무 무슨 소리를!?"

[츠바사] : "아아아아 미안 미안, 일단 목소리 좀 줄이고!"

[츠바사] : "억측이라고 했잖아. 리리코라면 좀 차분히 들어줄까 싶어서 이야기하는 거니까"

[리리코] : "미 미안해요...... 그렇지만 왜 하필이면 루나를 [주모자]라고?"

 

물었군. 내심 누가 [주모자]인지 궁금해 죽겠지. 자신을 죽이러 올 지도 모를 누군가가......

그건 당연한 거다. 다이스케 같은 녀석이 이상한 거지.

 

[츠바사] : "루나는 아까 자기 능력을 밝혔잖아?"

[리리코] : "예에, 그렇지만 그건 [수호자]에게 보호받기 위한 것이잖아요?"

[츠바사] : "그래. 다이스케가 그렇게 말은 했지만...... 한 번 생각해봐"

[츠바사] : "만약 자기가 [교환자]라면 모두에게 정체를 밝혀서 그것도 [수호자]와 연계하기 위해서 자기가 나서서 타겟이 된다......"

[츠바사] :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아?"

[츠바사] : "나라면 도저히 못 하겠는데......"

 

숨을 죽인 리리코의 작은 목소리가 동의를 표했다.

그래. 소심한 너라면 분명히 그렇겠지.

그리고 누구든 간에 자신을 기준으로 타인의 행동원리를 억측하기 마련이다.

 

[츠바사] : "이런 상황에서 정체를 밝힌다는 건, 정보를 먼저 밝히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아는 인간뿐이라고 생각해."

[리리코] : "정보를 먼저 밝혀요?"

[츠바사] : "그래. 루나가 망설임 없이 밝힌 덕분에 모두가 루나를 믿는 분위기가 되었잖아?"

[츠바사] : "거기다 [수호자]가 지켜주기까지 하고"

[츠바사] :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진짜 [교환자]가 나타난다면 어떨 것 같아?"

[츠바사] : "위험하다고 생각한 [주모자]가 당황해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리리코] : "그 그렇지만 루나는 월반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잖아요?"

 

리리코의 목소리가 순식간에 흐려진다. 의심이 부풀어가고 있는 모양이다.

 

[리리코] :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그렇게 열심히 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으니......"

[리리코] :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요?"

 

결국 판단의 기준은 인상이군. 어떻게 될 것 같네.

 

[츠바사] : "이런 상황에서?"

[리리코] : "그건, 그러니까......"

[츠바사] : "상황이 이런데 머리가 잘 돌아간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지"

[츠바사] : "평소 같았으면 [수호자]와 [교환자]의 트릭 같은 건 사쿠라가 벌써 생각해 냈을걸"

[츠바사] : "그렇지만 사쿠라는 이런 상황에 혼란스럽고 무섭다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나고 있어"

 

그치? 하고 흔드니 이번에는 강하게 끄덕인다. 역시 사쿠라의 상태는 누가 봐도 알기 쉬운 모양이군.

 

[리리코] : "다이스케 군이 진정하고부터는 어떻게 버티고 있는 것 같지만......"

[츠바사] : "아 그건 그래. 진심으로 좋아하는 상대가 정신 바싹 차리고 있다는 영향이 크지"

[리리코] : "사쿠라...... 다이스케 군을 좋아하니까요"

[츠바사] : "그렇지"

 

참 나, 모르는 건 다이스케 본인 뿐이겠지. 유지 녀석도 불쌍해.

 

[츠바사] : "루나 얘기로 돌아가서...... 리리코, 혹시 깜빡한 건 아니지? 토모에는 어젯밤에 죽었다구"

[리리코] : "그걸 어떻게 깜빡해요! 아까부터 조용히 있으면 어제 본 영상이 떠올라 손이 떨리는데......"

[츠바사] : "그렇지......? 이런 상황에 도저히 냉정하게 있을 수가 없지?"

[리리코] : "......"

[츠바사] : "그렇지만 보통이 아니라면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도 몰라"

[리리코] : "?"

[츠바사] : "내 말은 이런 데서 냉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건 가해자측이 아닐까 하는 거야"

[리리코] : "설마, 그럴 리가요......"

 

리리코 이 녀석. 참 간단하기도 하지.

평소에 아무리 야무진 척해 봤자 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는 거 다 안다고.

그렇기에 행동을 취하려면 가장 먼저 이 여자를 상대해야겠다고 판단한 거지만.

나는 잠깐의 상념에서 돌아가 불안이 가득한 리리코의 얼굴을 정면에서 응시하며 말했다.

 

[츠바사] : "알겠어? [주모자]는 토모에를 죽였다. 벌레라도 죽이듯이 간단하게 말이야......"

[츠바사] : "즉, 어제 룰을 읽은 즉시 게임의 본질을 이해할 정도의 두뇌를 가졌다는 이야기가 돼"

[츠바사] : "일단 바보트리오는 제외. 마이도 좀 힘들겠지. 사쿠라는 보다시피 무리고"

[츠바사] : "레이나 리리코가 그런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 안 해"

 

자신이 용의를 벗었다는 것에 대해 안도하는 것마저도 뻔히 알 수 있다.

거진 다 됐군

 

[츠바사] : "나는 역시, 루나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해"

[츠바사] : "동기도 없지는 않아......"

[리리코] : "동기요......? 무슨 소리죠 그게?"

 

알아서 달려 든다. 이제 넘어온 거나 다름 없다.

 

[츠바사] : "루나는 토모에와 사이가 좋은 척 하고 있지만, 실은 일일이 너무 간섭해온다며 귀찮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리리코] : "설마요!?"

[츠바사] : "여기 오기 조금 전에 말이지, 루나가 내게 직접 상담을 하러 왔었거든"

[츠바사] : "토모에가 자기를 너무 과보호한다며 어떻게 할 수 없을까 하고"

 

뭐 이건 완전 개구라지만.

 

[츠바사] : "게다가 토모에도 왠지 모르게 루나를 싫어하는 데가 있었어"

[츠바사] : "리리코, 예전에 루나랑 토모에가 서로 의자를 집어던지고 할 정도로 크게 싸웠던 걸 알고 있어"

[리리코] : "소 소문은 들은 적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싸움 탓에 더 사이가 좋아졌다고......"

 

그렇다. 싸움 얘기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새빨간 거짓말이라도 조금만 사실을 섞어주면 어느게 진실인지 판단하기 어려워지지.

 

[츠바사] : "사이 좋은 척하고는 있지만, 사실 마음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모르는 거라고"

[츠바사] : "여자 애들 심정 같은 건 리리코가 더 잘 알 것 아냐?"

[리리코] : "......"

 

조용히 할 수 밖에 없겠지. 토모에의 과거를 알고 있는 데다가 더욱이 그 과거를 묵살한 적이 있는 너니까.

 

[츠바사] : "그래서......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냐면. 루나를 [주모자]라고 가정한다면 [교환자]는 따로 있다는 게 되는데"

[츠바사] : "진짜 [교환자]가 나오면 당연히 혼란스러워질거야. 루나가 노리는 건 그게 아닐까?"

[리리코] : "만약에 루나가 거짓말을 한 거라면, 오늘 [교환자]와 [수호자]의 연계는 실패한다......?"

[츠바사] : "그럴지도 몰라. 그렇게 된다면 또 다시 사망자가 나오게 되겠지......"

[리리코] : "그럴 수가......! 저 저는......!"

[츠바사] : "응?"

 

허공을 맴도는 시선과 입 안에서 웅얼거리는 어떤 단어.

뭐라는 거야......? 제대로 말하라고!

 

[리리코] : "제 제가 [수호자]인데 오늘 누구를 지켜야 좋을까요......!?"

 

걸렸다!

하하, 아하하하하하하하하하!

이 녀석이 [수호자]라 이거지!

대박인데 이거?

흔들어보길 잘했네! 가볍게 첫 관문 클리어!

능력에 따라서는 내 수족으로 부릴까 했지만 [수호자]라면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수호자]와 [교환자]의 연계는 이걸로 쫑이다......!

 

[츠바사] : "리리코, 진정하고 내 얘기 좀 들어봐"

[츠바사] : "진짜 [교환자]가 나왔을 때를 대비해 [수호자]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해"

[츠바사] : "그렇잖아? 그때야말로 진짜 [교환자] [수호자] 연계 작전이 시작되는 거니까!"

[츠바사] : "그러니까 [수호자]의 능력은 리리코 본인을 지키는 데 쓰는게 좋을 것 같아"

[츠바사] : "리리코, 너는 살아남아야 할 의무가 있어......!"

 

살아남는다 는 단어에 리리코의 미세한 반응이 보인다. 그렇겠지, 당연히 누구든 자기 자신이 가장 중요하겠지.

 

[리리코] : "알겠어요 저 저, 저를 지키도록 할게요......"

 

이걸로 일단락되겠군.

 

[츠바사] : "앞서 얘기했지만 우리가 나눈 이야기의 내용은 비밀로 해줬으면 해. 리리코의 역할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는 게 좋을거야"

[츠바사] : "물론 나도 비밀은 엄수할 테니까"

[리리코] : "응...... 고 고마워요 츠바사 군"

[츠바사] : "뭘. 살고 싶은 건 나도 마찬가진데"

[츠바사] : "그렇지만 다이스케의 태도는 좋지 못해...... 이 게임은 분명 [고발자]를 발견해 [고발]하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봐......"

[츠바사] : "엇, 이러면 안 되지. 그만 정신을 빼고 있었네. 샐러드를 얼른 만들어야 되는데......"

[리리코] : "아 어머나, 나도 참...... 얼른 하지 않으면 제대로 안 익겠어요"

 

별 거 없네. 한 3분이나 걸렸나?

내가 [주모자]

유지가 [배신자]

리리코가 [수호자]

루나가 [교환자]

 

이건 확실하다고 봐도 무방하겠지.

남은 건 다이스케, 사쿠라, 레이, 그리고 마이군.

크큭, 점점 재미있어지는걸......

 

[마이] : (...그렇게 나오시겠다)

[마이] : (다른 방에 가는 척 하고 엿듣길 잘했네)

[마이] : (츠바사가 선의로 리리코에게 충고하고 있다고는 생각할 수 없어......)

[마이] : (......그렇다는 건, 츠바사가 [주모자]라서 내부분열을 조장하고 있다?)

[마이] : (거의 맞다고 보면 되겠지...... 아빠의 자식인데다 [주모자]만은 사전에 선정된다는 이야기도 들리니)

[마이] : (......아니, 아직 단정하는 건 일러)

[마이] : (게다가 츠바사라면...... [주모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스스로의 재미를 위해 피를 부르게 할 법도 하니)

[마이] : (아무렴 저 성격이니. 엇나가도 조금 엇나간 정도가 아닐 테니 주의할 필요가 있겠어......)

[마이] : (어쨌든 간에 루냥이 [교환자], 리리코가 [수호자] 인 것은 확실하다고 볼 수 있겠지...)

[마이] : (그것만 해도 어디야)

[마이] : (엿들었다는 걸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지. 들켰다가는 츠바사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따각 따각, 따각

 

[츠바사] : "리리코...... 마이가 돌아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OK?"

[리리코] : "아 알겠어요"

[마이] : "다~녀와씀다♪

[츠바사] : "왜 이리 늦어"

[리리코] : "아 왔어요?"

 

말 더듬는 거 봐. 너무 동요하잖아 리리코. 뭐 소심하니까 어쩔 수 없나.

신경이나 돌려야겠다.

 

[츠바사] : "그래서 참치 캔은?"

[마이] : "이런 것 밖에 안 보였슴미다 받으숏!"

 

마이가 던진 것을 캐치. 소고기 통조림이라. 여기도 어디 있었던 것 같은데.

 

[마이] : "나 참, 죄다 짠 것 뿐이었다구. 주최자는 상태불량인 참가자도 좀 위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네가 제대로 못 찾는 거겠지...... 식사에 대해 제한적인 환자용인 재료도 분명히 준비되어 있을 거라고.

 

[마이] : (뭐, 아까 방을 나올 때 굴러다니던 걸 슬쩍 하나 주워 나온 것 뿐이지만)

 

[츠바사] : "그랬구나...... 괜히 귀찮게 해서 미안하게 됐네. 지금 있는 재료로 어떻게 될 것 같아"

[마이] : "오케이~"

[리리코] : "저도 슬슬 다 돼 가요"

[마이] : "으~음. 설마 진짜로 우동일 줄이야"

[리리코] : "수타는 아니지만요. 영양을 생각해서 건더기가 듬뿍한 된장 우동을 만들어 봤어요"

[마이] : "와, 기대기대~"

[마이] : "얼른얼른 만들자! 마이도 도울게"

[츠바사] : "으이구, 속도 좋은 녀석"

[마이] : "냐하하하"

[리리코] : “많이 기다렸죠~ 리리코 특제 우동과 샐러드에요”

 

리리코는 야채샐러드를 가득 채운 거대한 그릇을 안고 있다.

츠바사와 마이가 함께 날라온 것은, 난민 수용소에서 사용할법한 커다란 솥이었다.

도착하기에 앞서 나와 유지는 테이블과 긴 의자를 모아두었다. 약간 낮지만 식탁으로서의 역할은 충분히 행할 수 있겠지.

 

[다이스케] : “수고. 여기 두면 돼”

[츠바사] : “오~ 눈치도 참 빠르시지...... 읏챠”

 

냄비를 내리자 9할 정도가 담긴 광택이 나는 갈색 액체가 출렁거렸다.

된장우동이라. 양도 영양도 충분하겠네.

 

[마이] : “마이도 도왔다규~”

[츠바사] : “맛보는 것도 도왔다면 도운 건가...... 이 녀석 때문에 유부의 반 이상이 사라졌지”

[마이] : “전생에 여우였답니다! 냐하하하하”

[츠바사] : “나 참...... 곱게 자란 나도 식칼 정도는 쓸 줄 아는데......”

[마이] : “어마나 그러세요. 것 참 좋은 아내가 되시겠는걸요. 이 참에 확 여자가 되어버리는 건 어때? 응?”

 

사라지면 정말로 여자가 되어버릴 지도 모를 위치를 조준하는 마이를 앞에 두고 몸을 사리는 츠바사.

 

[유지] : “그만하라고...... 그런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단 말이다”

[마이] : “흥. 알았어 뭐. 여자를 면박하면 경박바보의 이름이 운다?”

[츠바사] : “아 글쎄 마이 너는 여자로 분류되지 않는다니까”

[사쿠라] : “우동......”

[레이] : ‘불결......’

[루나] : “흔들흔들......”

[다이스케] : “너희 언제까지 그럴 셈이냐?!”

[마이] : “물론 농담이지! 자, 얼른 먹읍시다!”

 

레이도 끄덕거린다. 자, 정리 됐으면 이제 식사 시간이다.

그 뒤에 식기도 날라와 모두에게 한가득 푸짐한 우동이 제공된다.

솥에도 아직 가득해 얼마든지 더 먹을 수 있다.

 

[유지] : “그나저나 이렇게나 많이 잘도 만들었네......”

[레이] : ‘요령이 좋아서 그래요’

[리리코] : “후후, 여덟 형제자매 중 장녀가 되어 매일같이 하다 보면 누구라도 이렇게 돼요”

 

그렇다. 더군다나 어머니께서 9번째 아이를 임신해서 입원 중일 터. 진짜 혼자서 전원의 식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언젠가 한 번 리리코네 가족이 버스 정류소에 모두 모여 있는 것을 보고 인사한 적이 있다.

리리코와는 정 반대인 것 같은 개구쟁이와 말괄량이들 사람 좋아 보이는 아버지와 호쾌한 어머니.

어릴 적 부모님과 사별하고 또 이어 동생마저 잃은 나에게 있어 그야말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이었다.

 

문득 생각한다. 내게는 가족이 없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관계에 더욱 얽매이는 것이 아닐까?

이러면 안 되는데. 별 상관없는 데까지 생각이 미친다.

 

[다이스케] : “자, 그럼 먹자”

 

감사인사를 하고, 다들 이제 막 먹으려던 찰나

식사는 순조롭게 시작되지 못했다.

사쿠라가 그릇을 앞에 두고 고개를 숙인 채 좀처럼 움직일 생각을 않았다. 그것을 보고 다들 젓가락을 내린다.

 

[다이스케] : “사쿠라......?”

[사쿠라] : “미안해, 얘들아......”

 

갑자기 사쿠라가 일어서더니 자리를 뜨려고 한다.

 

[리리코] : “사쿠라, 우동은 입에 안 맞나요?”

[사쿠라] : “아니, 그런 게 아니야. 그저 식욕이 생기지를 않아서...... 정말 미안해. 기껏 만들어 주었는데”

[다이스케] : “그래도 좀 먹어 둬. 마지막으로 뭘 먹은 게 언젠지 모르겠지만 쓰러지기라도 하면 난감하잖아”

[츠바사] : “그래. 배가 고파선 아무것도 할 수 없잖아”

[사쿠라] : “그렇게까지 말하니까 확실히 하겠는데”

[사쿠라] : “친구를 죽인 사람이 있는 데서 식사는 도저히 못하겠거든”

 

공기가 얼어붙는다.

분명, 모두들 마찬가지겠지.

그저 굳이 입 밖에 내려고 하지는 않고 있었을 뿐.

 

[사쿠라] : “미안해. 나는 방에서 보존식품으로 적당히 때워야겠어”

[마이] : “어유, 사쿠링도 참. 그런 소리 하는 사람이 대게 다음 날 죽는다구”

[다이스케] : “마이 너도 괜한 소리 하지 마”

[다이스케] : “우리 중 누가 한 일이든 간에 정말 바라서 한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다이스케] : “죽는 게 무서워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실수한 거라고 생각해.”

[다이스케] : “그렇다고 해서 용서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최소한 그 마음만큼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이스케] : “지금 이 자리에서 말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을 거란 것도”

 

다들 조용히 입을 다문다.

고개 숙여 어깨를 떠는 루나의 모습이 슬픔에 견뎌내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를 잃은 루나에게 있어 내 말은 어처구니없이 들릴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이미 저지른 잘못은 되돌릴 수 없지만, 속죄할 마음만 있다면......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할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친구라고 생각할 수는 있다......

 

[다이스케] : “사쿠라, 나중에 1층을 다시 둘러보자고 했지? 그거, 밥 먹고 나면 가자”

[사쿠라] : “그 그렇지만......”

[다이스케] : “아직 우리 이외에 범인이 있을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야. 숨겨진 출입구 같은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

[다이스케] : “나는 뭘 찾는 건 잘 못하니까 네가 있으면 좋겠어”

[사쿠라] : “내 내가 있으면 좋아......?”

[다이스케] : “그래. 위험한 일이 생기면 지켜줄 테니까”

[사쿠라] : “정말......?”

[다이스케] : “그래. 나랑 유지가 있으면 웬만한 성인 남성보다는 낫겠지?”

[유지] : “아 암. 그렇고말고”

 

픽~ 사쿠라가 시선을 돌리고 어깨를 늘어뜨린다.

 

[리리코] : “으흠 으흠”

[츠바사] : “음......”

[마이] : “아~......”

[루나] : “......”

 

가만 보니 다들 어딘지 좀 이상하다. 왜들 그러지?

 

[다이스케] : “어, 어쨌든 간에 조금이라도 먹어두지 않으면 몸이 버티질 못한다고”

[다이스케] : “조금이라도 먹어 보자 응?”

[사쿠라] : “그래 알겠어...... 미안해 리리코. 괜한 소리를 해서”

[리리코] : “신경 쓸 거 없어요...... 딱히 틀린 말을 한 건 아니니까”

 

사쿠라의 사죄에 리리코가 미소로 대답했고 이렇게 일단락된다. 사쿠라도 다시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잘 먹겠습니다] 인사했다.

둘러앉아 다 같이 식사를 한다..

리리코는 루나를 배려해 간을 했는지 그리 진하지는 않았지만, 된장과 함께 우러난 국물의 맛이 심신에 스며드는 것 같았다.

젓가락의 움직임에 따라 서서히 대화가 돌아온다. 농담이나 웃음소리도 흘러나오게 되었다.

역시 공복감이 우리를 더욱이 불안정하게 한 면도 적지 않았나 보다. 식사를 하길 잘 했다. 리리코! 고마워.

 

그러나...... 역시, 이 게임을 머릿속에서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겠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첫 그릇을 비우고 젓가락을 놓는 녀석이 나올 때쯤,

[리리코] : “저기...... 사쿠라”

 

의외로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온 것은 리리코였다.

 

[사쿠라] : “왜 그러지 리리코?”

[리리코] : “생각을 좀 해봤는데요. 루나 이외에도 다들 자기 역할을 밝혀 두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건 결코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순식간에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더보기

[츠바사] : (! 이 여자가 갑자기 무슨 소릴!?)

 

나는 세 그릇째 먹던 우동이 그만 목에 걸릴 뻔 하면서 황급히 둘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뭔소리야? 아까 내가 제안했을 때는 집중 포화를 당했던 건데......

 

[리리코] : “아무래도 루나만이 위험을 무릅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을......”

 

그렇구나...... 능력을 밝힌 탓에 위험이 늘어난 루나를 걱정하고 있는 거구나.

 

더보기

[츠바사] : (그렇군. 루나가 [교환자]가 아니라면 진짜 [교환자]가 나오도록......)

[츠바사] : (칫, 괜한 짓을......)

 

그렇지만 사쿠라는 망설임 없이 말했다.

 

[사쿠라] : “아니, 그렇지 않는 것이 좋아”

[사쿠라] : “루나에게는 미안하지만 역할을 밝혔다가는 괜한 정보를 [주모자]에게 주는 것이 되어버리는걸......”

[사쿠라] : “[주모자]가 무슨 생각을 갖고 있든 관계없이, 필요 없는 건 굳이 알 필요가 없어”

[사쿠라] : “루나가 [교환자]의 능력으로 타겟이 되고 그것을 [수호자]가 지키는 것으로 모두가 무사하다...... 그러면 충분하다고 봐”

[사쿠라] : “그러니까 [수호자]는 딱히 나서서 밝힐 필요도 없지 않아?”

[리리코] :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걸 보면 사쿠라는 [수호자]가 아닌 모양이네요?”

[사쿠라] : “으......”

[사쿠라] : “아 아니, 그렇다고만 할 수는 없지 않아? 남의 이야기를 하듯 한 것은 어디까지나 예를 들자는 것이니...... 내 말 알겠지?”

[츠바사] : “리리코, 그런 소리는 하지 말자!”

 

이번에는 갑자기 나서는 츠바사에게 시선이 모인다.

 

[리리코] : “예??”

 

리리코는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안다.

예상치 못한 질문에 사쿠라의 말문이 막힌 것으로 보인다.

즉, 의도적으로 남의 이야기처럼 한 것이 아니라 무의식적으로 자기 이외의 [수호자]에게 말하듯 했다.

리리코가 그 질문에 대한 반응으로 사쿠라가 [수호자]가 아니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레이] : ‘섣부른 발언으로 역할을 추측하게 된다는 거군요’

[레이] : ‘그리고 그것은 다른 사람의 능력을 추측하는 데 도움이 될 테고요’

[리리코] : “아...... 죄 죄송해요”

[사쿠라] : “사과할 필요 없어!”

[사쿠라] : “내가 [수호자]라서 위장을 위해 일부러 아닌 척 했다는 가능성도 있으니까!”

[사쿠라] : “그러니까 이 이야기는 그만 없었던 것으로 하자. 국물 좀 더 주겠어”

 

더보기

[츠바사] : (......사쿠라, 좋아. 네 논리는 틀리지 않았어. 그렇기에 내가 원하는 대로 이야기를 끌고 가지......)

[츠바사] : (저 녀석을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자칫했다간 다이스케에게 들킬 것 같으니...... 좀 더 두고 볼까)

 

[루나] : “......”

 

사쿠라의 이야기를 들은 탓인지, 루나는 조용히 빈 그릇을 쳐다보고 있다.

앞서 능력을 밝힌 것이 후회되는 걸까.

아니, 루나의 결단은 칭찬받아 마땅하다.

잠깐 망설였지만 나는 루나와 마주서서 말했다.

 

[다이스케] : “루나, 너 혼자 위험을 무릅쓰게 만들어서 미안해”

[다이스케] : “그렇지만 그렇게 나와 줘서 정말 살았어...... 이걸로 이제 우리는 이 게임에 대항할 수 있게 되었어”

[루나] : “괜찮아. 나는 토모에 몫까지 약속을 이루고 싶은 것뿐이니까.

 

루나는 고개를 숙인 채, 끄덕인다.

목소리가 밝지는 않다...... 불안과 싸우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이야기로 루나를 안심시켜 줄 수는 없었겠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토모에의 이야기를 떠올리고 나는 잠시 생각한 다음,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다이스케] : “이 안에 있을 [수호자]는 제발 들어주길 바래.

[다이스케] : “몇 번이고 부탁해. 능력은 부디 루나를 지키는데 사용해줘.”

[다이스케] : “우리는 모두를 친구이고, 소중한 동료라고 생각하고 있어”

[다이스케] : “우리가 힘을 모은다면 이런 빌어먹을 게임 같은 건 얼마든지 끝낼 수 있다고. 그렇잖아?”

 

내 이야기에 모두들 수긍하는 듯하다.

 

[마이] :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뭐, 그렇긴 하지?”

[다이스케] : “오그라든다니......”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할 줄이야......

 

[리리코] : “다이스케 군 다워요”

[사쿠라] : “열혈바보 녀석”

 

더보기

[츠바사] : (다이스케 너는 도대체 얼마나 구역질이 나올 만큼 무른 거냐. 언제까지 그런 소리를 할 수 있을지 기대가 돼)

[츠바사] : (그나저나 이 녀석의 카리스마 만큼은 도저히 얕볼 수가 없겠는걸. 지금의 연설로 다시 리리코가 딴생각을 품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츠바사] :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나중에 한 번 더 접촉해서 바람을 불어 넣어 둬야겠군......)

 

다들 좀 진정이 되었을까.

정작 중요한 루나는 어떨까.

얼굴을 보니, 활짝 갠 표정으로

 

[루나] : “괜찮아. 나는 내가 할 일을 할 테니까”

 

그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이 화제는 새삼 다시 꺼낼 필요 없겠지.

루나는 자리에서 의자를 밀어 넣었다.

 

[루나] : “잘 먹었습니다”

 

일본인과는 동떨어진 외견의 루나가 하니 왠지 신기한 느낌이 드는 행동.

 

[다이스케] : “방에 돌아가게?”

[루나] : “응. 다 먹었으니까 좀 쉴래”

 

루나는 그렇게 말하고 붙잡을 틈도 없이 방으로 돌아갔다.

 

[마이] : “루냥, 괜찮나 몰라......”

 

걱정하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다.

좀 엉뚱하기는 해도 마이 또한 분명히 루나에게 신경을 쓰고 있다. 아니, 그 엉뚱한 짓도 루나를 위한 것이겠지.

 

[다이스케] : “걱정되면 좀 보고 오지 그래?”

[마이] : “으~음...... 혹시 잠이라도 자려는 거면 방해될 테니까 그냥 됐어”

[마이] : “그치만 다이스케 너도 제법 걱정된다”

 

의외의 발언인걸.

 

[다이스케] : “헐 왜?”

[마이] : “에이 그야 다른 사람 걱정한다고 너무 용쓰는 게 빤히 보이니까 그렇지”

 

음~ 주변에서 보면 그런가. 굳이 말하자면 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 뿐이다만.

 

[마이] : “지금까지 무지 도움이 됐으니까 감사하고 있다구......”

[다이스케] : “무슨 감사를 한다고. 나는 그저 우리가 서로 의심하고 미워하는 게 싫을 뿐이야”

 

더보기

[마이] : "......"

[마이] : (단순하고 별 생각이 없는 거네. 츠바사가 가장 싫어할 만한 타입)

[마이] : (아빠는...... 과연 어떨지. 이런 인격도 인간의 재미네 어쩌네 하고는 곧 쓰레기처럼 흥미를 잃어버리려나)

[마이] : (......좀 더 보고 싶은데. 어째서 다들 다이스케의 말을 들으면 안심하게 되는지...... 나마저도 마음이 든든해지는지......)

[마이] : (그건 단순히 사람의 마음을 끄는 재능일 뿐일까)

[마이] : (아니면 다이스케의 신념이 올발라, 다들 거기에 찬성하고 있기 때문에?)

[마이] : (그건 분명, 이 게임의 결과가 증명해 줄 거야. 일단은 오늘 밤 리리코의 결단력 나름인가......)

[마이] : (그럼, 그건 그렇다 치고 이 고지식한 남정네한테 장난이나 좀 쳐볼까)

 

[마이] : “그렇지. 서로를 미워하고 의심하는 건 좋지 못하지!”

[다이스케] : “아 그렇지......”

[마이] : “그럼 우리 서로 사랑을 해볼까!”

 

엉?

의문의 목소리를 낼 시간도 없이...... 무슨 생각이었는지 마이는 난데없이 슥 내 등 뒤로 돌아가 두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이스케] : “뭐 뭐하는 거야 도대체?”

[마이] : “응~? 그야 다이스케가 지쳐 보이니까 피곤을 좀 풀어줄까 해서. 자 어때? 쪼물쪼물”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덕분에 피곤이 살짝 풀리기 시작하고 미묘한 느낌이 드는......

아 아니, 그러면 안 되지. 그렇게 가벼운 마음으로 이성의 어깨를 안마를 해주는 건 좀......

 

[사쿠라] : “거 거기, 지금 무슨 짓이야!”

[레이] : ‘안마하는 게 뭐 어때서요?’

[마이] : “그치 그치. 딱딱한 소리 하지 말고...... 아~앙”

 

갑자기 이상한 소리 낼래! 내가 무슨 짓을 했다고!

 

[사쿠라] : “마이 너어어어어어!”

[레이] : ‘도대체 무슨 짓을 한거에요!?’

[마이] : “에이, 아무 것도 아냐~. 그냥 뭐 사알짝 다이스케의 뒤통수와 마이의 C컵이 제 1차 접근조우를 경험한 것뿐이라”

[다이스케] : “어, 언제 그랬다고......”

[사쿠라] : “뭐가 그렇게 좋아서 헤벌쩍 하는 거야 이 바보가!”

[레이] : ‘불 결 해 요’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창끝이 내게로 향하는구나.

 

[다이스케] : “아니, 누가 헤벌쩍 했다는 건데? 닿은 적도 없거든?”

[마이] : “어머, 그랬어? 그럼 이래도 그런 말이 나올까나......”

 

사고가 멈춘다.

꾸우우우욱.

일말의 주저도 없이, 그 부드러운 감촉이 후두부에서 느껴졌던 것이다.

 

[사쿠라] : “X$●※▽←%~~~!!!!"

[레이] : (아무 말 없이 스케치북을 테이블 위에 훌쩍 내려놓았다)

[마이] : “우와아아...... 어쩐지 새로운 감각에 눈뜬 것 같은...... 우우웅......”

[유지] : “이 악 물어라. 이 복에 치어 죽을 놈아!”

[마이] : “지금이다. 아잣!”

 

당장에 몸을 빼는 마이. 압박해 오는 세 개의 인영. 유지, 사쿠라, 레이.

어? 레이까지?

아니, 근데 왜 내가 나쁜 놈 취급을 받아야 돼!?

 

[다이스케] : “아니 자, 잠깐 크헉!! 쿨럭! 꺼윽 우욱 아욱 그, 그건 진짜 안 돼...... 끄악!”

[츠바사] : “리리코, 나도 좀 지쳤는데(반짝)”

[리리코] : “어머머, 그러면 저녁에는 피로가 확 풀리는 걸로 준비해야겠는걸요”

[츠바사] : “비이러머어그을! 이렇게 된 이상 마이 너라도 좋다! 나에게 안식을!”

[마이] : “아하하, 이렇게?”

 

멀리서 까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츠바사의 비명이 들린 것 같았지만, 나 본인이 깨지는 소리와 격통에 묻혀 사라져 간다.

 

아, 소란스럽다.

그렇지만 이런 소란이 반갑다.

마이 덕분에 조금은 평소 우리의 모습대로 돌아간 것 같다.

고맙다 마이.

근데 절대로 그 감촉에 대한 인사는 아니라고.

정말 고맙다 마이.

 

더보기

[마이] : (......지금은 이러면 됐어. 괜한 의심에 사로잡혀 물리적인 난투극이 발생하는 것만은 피해야 돼)

[마이] : (이식을 위해서는 몸이 말끔하게 남아야 하니까. 내장에 상처가 나는 걸 아빠가 바라지는 않으니까......)

 

그 뒤, 나와 사쿠라와 유지 셋이서 다시 한 번 지하실을 탐색하게 되었다.

어쩌면 뭔가 놓친 것이 있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있어 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으로 이번에는 시간을 충분히 들어 창고의 내용물도 포함해 상세하게 조사하기로 했다.

 

3시간 정도 흘렀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숨겨진 통로나 진범에 관한 단서같이 중요한 것은 발견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수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단 지하에 비축되어 있는 물품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다채로웠다는 것.

점심 식사의 준비로 우동 사리 같은 반가공식품이 업무용 냉장고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육고기*생선 같은 것은 적었지만 장기간 보존이 가능한 야채 같은 건 상당한 양이 준비되어 있었고......

온갖 종류의 캔과 온갖 종류의 즉석식품을 포함한 컵라면 같은 인스턴트식품, 훈제식품에 건어물......

환자용 인스턴트도 산처럼 쌓여 있었다. 겨우 당뇨병 환자용이라는 것을 알아냈지만 그 이외에는 전혀 모르겠다.

찾아보면 루나가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밖에 이유식이나 가루우유까지 있었다. 도대체 뭐 하는데 쓰라는 거지......?

참고로 사쿠라는 각각 식품의 포장지를 상세히 조사해 보았지만 전국에 유통되는 대기업의 제품뿐이었던 것에 유감을 표했다.

지역한정판매 상품이나 가게의 독자 브랜드가 있었다면 구입처로부터 현 위치를 대강은 짐작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었나 보다.

용케 그런 데까지 생각이 미치는군. 확실히 사쿠라의 주의력은 많은 도움이 된다.

그리고 충실한 것은 식재료뿐만이 아니었다.

모포나 쿠션 등 생활 잡화도 풍부하게 갖춰져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방을 좀 더 괜찮게 꾸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난방기구도 몇 개 정도 보였다. 만약에 겨울이라면 이걸 쓰라는 소린가? 석유스토브에는 등유가 들어있는 듯 하다......

창고 안쪽에는 장작까지 있었다.

이건 아마도 더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장작을 이용하는 스토브를 위한 것이겠지...... 풀무와 부젓가락까지 들어있는 것 같으니......

찾아보면 진짜 트럼프 카드도 나올 것 같지만 결국 진짜 중요한 것은 찾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 방금 막 수색을 종료한 참이다.

 

[사쿠라] : “뭐 그렇게 이것저것 많이도 있었네. 너희는 따로 변명할 것이라도 있어?”

[다이스케] : “미안”

[유지] : “쏘리”

[사쿠라] : “주의력이 너무 산만해 둘 다. 물건 뒤라든가 선반 안쪽 같은 곳은 전혀 조사하지 않았지?”

[유지] : “자잘한 거 너무 신경 썼다간 잔주름 는다”

[사쿠라] : “겁을 상실했다 보구나......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다시 한 번 말해 보겠어. 유지?”

[유지] : “아, 무셔무셔”

[다이스케] : “굳이 말하자면 사쿠라의 관찰력이 뛰어난 거지. 보통 그런 방구석에 있는 바퀴벌레 시체 같은 건 보지도 못하지”

 

1시간 정도 전 이야기다. 그 난데없는 비명은 제법 희귀한 것이었다.

 

[사쿠라] : “시 시끄러워! 놀리려는 것인지 칭찬하려는 것인지 확실히 하라구!”

[다이스케] : “당연히 칭찬입죠”

[유지] : “핫핫핫...... 그런데 사쿠라, 잠깐 저것 좀 봐 봐”

[사쿠라] : “응? 뭔데?”

[유지] : “저기 잡동사니 더미 말인데, 아까 내가 볼 때 하도 대충 봐서 말이야. 마지막으로 네가 한번 훑어봐 주라”

[사쿠라] : “뭐어? 대충?”

[유지] : “그건 좀 따지지 말고, 그 관찰력을 보고 부탁하니 제발”

[사쿠라] : “나 참, 왜 이렇게 번거롭게 만든담”

 

중얼중얼하며 넘쳐나는 잡다한 물건을 안으로 발을 밀어 넣는 사쿠라.

 

[유지] : “그러면......”

 

옆에서 보면 노골적으로 사쿠라를 멀리 떨어뜨린 유지가 내 쪽으로 돌아서서 나직이 중얼거렸다.

 

[다이스케] : “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자리 만드는 건 좀 아니다 싶은데”

 

그런 말에 순순히 따라주는 건 사쿠라밖에 없을 거다.

 

[유지] : “시끄러. 근데 다이스케, 좀 물어볼게 있는데......”

[다이스케] : “뭔데?”

[유지] : “너, 이 게임에서 사쿠라를 지킬 각오는 되어 있냐?”

[다이스케] : “갑자기 왜 그러는데?”

 

갑작스러운 그 말을 순간적으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 사쿠라 개인에 한정시켜 묻는 의의를 모르겠으니까.

 

[유지] : “됐으니까 일단 대답해. 이 정도 거리면 사쿠라에게 들리지는 않을 테니”

 

사쿠라를 보니 박스에 묻혀 바스락대며 주변을 탐색하고 있다. 뭐 괜찮기는 하겠다만......

잠깐 생각을 해본다. 우리 셋에 관한 이야기라면 분명 옛날에 있었던 일에 대한 이야기겠지.

그러고 보니 어릴 적 사쿠라를 데리고 나와 놀러 갈 때마다 누가 사쿠라를 지키냐는 것으로 경쟁을 하곤 했던 기억이 언뜻 난다.

지금 생각하면 괜스레 어릴 적에 한정된 추억. 여자 아이의 앞에서 폼 좀 잡아보겠다며 보인 의욕.

그 시절 얘기일까. 나는 조금 쓴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이스케] : “당연하지”

[유지] : “무슨 일이 있어도?”

[다이스케] : “그래. 그 이전엔 아무도 죽게 할 생각 없어”

 

표정을 바로 잡고, 그렇게 단언한다.

 

[다이스케] : “[주모자]의 능력이 막힌 이상, 앞으로 누군가가 폭주해서 직접적인 폭력 사태를 막기만 하면 되는 거잖아.

[다이스케] : “우리 둘이면 누구든 막아낼 수 있지 않겠어?”

 

그러나......

 

[유지] : “진짜 더럽게 낙천적이구나, 넌”

 

이 근육바보가 나를 한심이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건, 단순히 내 기분 탓만은 아니겠지.

 

[다이스케] : “그러니까 도대체 왜 그러냐고?”

[유지] : “잘 들어라. [수호자]가 어쩌고 하는 거랑은 상관없어. 이건 각오의 문제다”

[유지] : “나는 사쿠라를......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킬 거다. 반드시”

 

유지의 표정은 진지했다.

이건 단순한 잡담이 아니다. 이제 와서야 그것을 깨닫는다.

 

[유지] : “만약에 사쿠라 이외의 모두를 죽이지 않으면 사쿠라가 살 수 없는 상황이 될 경우에, 너는 사쿠라를 지킬 거냐?”

[다이스케] : “무슨 소리를......! 너 지금 사쿠라가 [주모자]라고 생각하는 거냐.....!?”

[유지] : “그렇다고 하지는 않았어”

[유지] : “그렇지만...... 만약 사쿠라가 [주모자]라고 해도 내 대답은 변함없다. 사쿠라만은 반드시 살릴 거니까......”

[다이스케] : “바보 같은 소리 하지마! 사쿠라가 [주모자]일 리가 없잖아.....!”

[유지] : “하하~ 예를 들면 그렇다는 거지. 이 멍청아”

 

웃으며, 유지는 나에게 가볍게 주먹을 내지른다.

하지만 시험 당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 나는 도저히 장난스럽게 그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곧 유지도 진지한 표정을 되찾는다.

 

[유지] : “그렇지만 말이야. 내가 듣고 싶은 건 그런 거라고”

[유지] : “알겠어? 그럼 다시 한 번 묻는다. 다이스케 너는 사쿠라를 지킬 각오가 되어 있냐?”

[다이스케] : “......”

 

나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사쿠라] : “아니, 근데 왜 나 혼자 찾아봐야 돼! 진짜 뭐 저런 녀석들이 다 있담! 조금은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유지] : “아 미안. 지금 간다!”

 

유지가 곧장 대답을 한다.

 

[유지] : “이것 참. 결국은 눈치챘나. 가자 다이스케”

 

눈을 맞추지 않고 그리 말하고서 유지는 사쿠라가 있는 곳으로 달려 간다.

그 목소리는 평소의 시원시원한 것이었다.

질문은 끝났다고 말이라도 하듯.

 

[다이스케] : “크”

 

나는......

친구를 지킨다. 그러기로 했다.

 

그렇지만......

내가 뭘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걸까......?

결국 잡동사니 속에서도 쓸 만한 것은 찾지 못했고, 우리는 빈손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내 자문자답에도 물론 대답을 찾지는 못했다.

 

더보기

[츠바사] : (자 그럼......)

[츠바사] : (어떻게 리리코를 다시 구슬려야 할까)

 

[마이] : "야호~ 또 마이의 승리!"

[츠바사] : "큭...... 고작 마이 따위에게 지다니......!"

 

이 여자 상당히 방해된다.

아까부터 계속해서 오목 상대가 되고 있는데...... 계속해서 지고 있다......!

젠장......이 자식 왜 이렇게 세! 이렇게 된 이상 내 비기*무한쌍삼술을 사용해버릴까

아니, 진정하자. 승부에 열을 올릴 때가 아니다.

 

슬쩍 리리코를 보니, 스케치북을 통한 레이와의 담화를 즐기고 있었다. 참 태평스러운 녀석이군.

 

[리리코] : "그렇죠~ 참 든든하죠 그 사람"

[리리코] : "그렇게 필사적으로 부정할 것 없다니까요"

 

레이의 스케치북의 문장은 각도상 보이지 않지만, 리리코의 대화로 보아 대충 내용이 짐작은 간다.

그래, 그렇게 어디 열 올리고 있어 보라고. 그게 너희가 죽는 원인이 될 테니까.

그나저나, 어떻게 해야 하려나.

자연스러운 이유를 생각해보아도 떠오르지 않는다.

 

[츠바사] : "안 해 안 해. 진짜 못 이기겠네. 뭐 그렇게 잘해, 마이 너"

[마이] : "오올!? 지고 도망가는 거야!?"

[츠바사] : "그럼 안 됩니까! 방에서 좀 쉬련다. 볼일 있으면 알아서 들어오셈"

[마이] : "우"

 

불만스러워 보이는 마이를 남겨두고, 나는 방으로 돌아간다.

 

그러면...... 어쩔까.

더러운 침대에 몸을 맡긴 채 계략을 짠다.

이대로 갔다간 한 번 더 리리코에게 말을 걸기 전에 밤이 오고 말 것 같다.

그렇게 된다면 지금 상황으로 보아 리리코는 다이스케 측에 따를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 과연...... 루나는 어떻게 움직일까.

아까 모습을 보아하니, 다른 녀석들은 눈치채지 못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이상하다.

기특하게도 목소리는 평소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지만...... 고개를 숙이거나 주먹을 불끈 쥐는 등 의심스런 거동이 잦았다.

특이한 것은 다이스케가 말할 때마다 그런 묘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

마치 그 발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화라도 난다는 듯이.

 

음~ 이거 혹시 딱 걸린 건가.

내가 던져 넣은 검은 장갑을 루나가 목격이라도 했다거나.

그렇다면...... 재밌겠는걸. [수호자]와 [교환자]... 이미 연계는 무너진 거나 다름 없는 건가?

 

정리해 보자. 생각할 수 있는 패턴은 네 가지.

리리코와 루나 둘 다 동료를 믿고 연계가 성립되는 경우... 제일 성가시다.

루나만이 폭주하는 경우. 능력을 공격적으로 사용하겠지. 대상은 당연히...... 다이스케겠군.

이 때 루나를 죽이는 건 2중으로 불가능하다. 보호받고 있는데다 타겟으로 할 수도 없으니까. 반대로 다른 녀석들은 모두 무방비 상태.

다음. 리리코만이 폭주하는 경우.

그 경우에는 내 말대로 자신을 지키겠지. 그렇다면 누구를 노리든 간에 루나가 타겟이 될 터.

다음, 리리코와 루나가 모두 폭주.

리리코와 루나는 죽일 수 없으므로 루나만이 폭주하는 경우 보다는 안전한 녀석이 많아지지만......

어쨌든 연계는 완전히 무너진 상태다.

 

자, 그러면 어떻게 하는게 좋을까.

뭐, 가장 안전한 건 리리코와 루나 이외의 녀석을 노리는 것이지만, 이건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남은 녀석들은 모조리 자멸시킬 만한 거리가 있으니까. 괜히 독만 아까울 뿐이다.

마이 같은 녀석은 잔머리가 제법 돌아가는 것 같으니 정리해두는 게 좋을 것 같지만......

 

마지막으로.

루나를 노린다. 이건 일단 안 되겠군.

루나가 폭주하지 않는 경우는 어차피 사서 타겟이 될 거고, 그렇지 않으면 대타로 다이스케가 타겟이 되어버릴 테니.

이 시점에서 다이스케가 죽어버리면 모두에게 주어질 영향이 너무 크단 말이야.

레이나 사쿠라는 진짜 발광할지도 모르겠고, 유지가 확 돌아 공격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루나가 죽는 경우도 좋진 않군. 리리코 녀석이 나를 의심하게 될 테니...... 리리코를 처리할 필요가 생기니까 귀찮아진다.

불확정요소를 늘리기보다는 살려두는 게 좋다. 거기다 그 녀석 만큼은 앞에서 전부 폭로하고 나서 죽였으면 한다......

 

그렇다면, 리리코를 노리는 수밖에 없나.

기껏 얻은 장기짝이기는 하지만...... 뭐 어떻게 움직일지 모를 녀석을 데리고 있기도 그렇군.

 

음...... 미묘한걸.

어떻게 리리코의 행동을 확정시키고 싶은데...... 알아서 좀 오지 않으려나......

이 방 문을 열고 츠바사군, 잠깐 이야기가 있는데요 하고......

 

[리리코] : "츠바사 군. 잠깐 이야기가 있는데요......

"[츠바사] : "뭐어어어어어!?"

[리리코] : "으왓! 왜왜왜 왜 그러는 거죠!"

 

왜긴 왜야! 노크도 없이 들어오지 말란 말이야! 아 아니, 노크해봤자 들리지도 않던가, 이 방은!

 

[츠바사] : "미 미안. 잠깐 딴 생각을 좀 하느라 깜짝 놀라서"

[리리코] : "그랬어요...... 저도 깜짝 놀랐어요"

 

내가 이렇게 방심을 하다니...... 하지만 설마 진짜로 올 줄이야. 바라지도 않았던 찬스로군.

일단은 마음을 잡고, 리리코를 상대하기로 할까.

 

[츠바사] : "그래서, 무슨 일이야? 사랑 고백?"

[리리코] : "어? 아뇨, 그건 아니고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는 리리코. 헐~ 뭐야, 마음이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방법을 좀 바꾸는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만...... 귀찮으니까 그냥 농담인 걸로 해두자.

 

[츠바사] : "뭐 그건 아니겠지. 보나마나 루나 얘기 아니야?"

[리리코] : "예에...... 다이스케 군이 그렇게 말을 하니 역시 루나를 믿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래, 망설이고 있다 이거지.

그런 네게 세 가지를 알려주지.

두말할 것 없이 틀림 없는 진실을.

 

[츠바사] : "리리코에게 겁을 주고 싶지는 않은데 말이야"

[리리코] : "뭐 뭔가요?"

[츠바사] : "만약 내가 [주모자]라면 우유부단하게 망설이는 녀석부터 노릴걸"

 

리리코의 표정이 확 창백해진다.

이상한데. 이 녀석이 이렇게 알기 쉬운 녀석이었나.

맨날 기분 나쁠 정도로 실실대고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진짜 나한테 마음이 있었나? 아 진짜 귀찮네.

 

[리리코] : "어...... 어째서요?"

[츠바사] : "그 뒤로 쭉 생각을 해봤는데, 이 게임은 감정적으로 보이지만 의외로 논리적으로 움직여"

[츠바사] : "특히 [주모자]가 보기에는 누가 무슨 역할을 가졌나 생각하고, 또 누가 어떻게 움직일지를 생각한다."

[츠바사] : "그리고 자기가 이기기 위해 유리한 순서대로 죽이는 그런 게임이지"

[리리코] : "......"

[츠바사] : "그런 시점에서 보면 예상 외의 움직임을 보이는 녀석이 가장 껄끄럽겠지. 계산하기 힘든 예외적인 플레이어가......"

[리리코] : "제 제가 그렇다는 건가요"

[츠바사] : "글쎄, 내가 보기에는 꽤 의연한 것 같으니 그렇지 않을 것 같지만"

[츠바사] :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또 어떨지 모르겠네"

[츠바사] :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루나의 태도가 조금 이상하게 보여"

 

아아, 거짓말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참 편한 거구나.

 

[리리코] : "이상......해요?"

[츠바사] : "그래. 설령 [주모자]가 아니라고 해도, 뭔가 강한 감정을 억누르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 한 번 보면 알 거야"

[츠바사] : "루나가 [교환자]라고 해도 제대로 능력을 사용할지 어떨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츠바사] : "그러니까 나는 네가 자기 자신을 지켰으면 좋겠어......"

[리리코] : "그렇지만, 만약 루나가 [교환자]의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래, 한 번 타겟을 놓치면 가스 같은 거라든가 여러 정보가 술술 새어 나가서 일이 어떻게 되어버릴지 모르니

해치울 수 밖에 그렇게 되면 다음은 네가 타겟이 되는 거야. 귀찮지만.

 

[츠바사] :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절대로 아무한테도 얘기하면 안 되는 건데."

 

마지막으로 한 가지, 절대로 말하지 말았으면 하는게 있는데

 

[츠바사] : "다이스케의 방침이라는 거, 그렇게 진지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리리코] : "!?"

[츠바사] : "그 녀석의 말 대로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도저히 이 게임이 그렇게 간단히 끝날 수 있는 거라고는 생각을 못 하겠어"

[츠바사] : "아마 이 게임에서는 누가 누군가를 [고발]하여, 그걸 성공시키는 게 유일한 승리법...... 그 정도로 [주모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지"

[츠바사] : "그 과정에서 내가 죽는다면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렇지만 만약 살아 남는다면...... 그때가 승부할 때라고 생각해"

[츠바사] : "사람 수가 즉, 후보가 줄어들지 않으면 [고발]할 수도 없는 거야"

 

잔혹한 진실.

이 게임의 본질은 결국 어떻게 죽음의 공포를 극복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것이 이 겁 많은 여자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현실이겠지.

내가 한 말의 의미를 리리코는 이해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시체를 넘어가야만 한다는 것을.

자신의 생존과 타인의 죽음을 동시에 긍정한다.

그것은 리리코에게 있어 너무나도 큰 고통과 안도를 가져다 주는 달콤한 독

자, 스스로의 껍질에 숨어버리면 돼.

 

[리리코] : "고 고마워요. 갑자기 이런 소리를 해서 미안해요. 그만 나가볼게요......"

[츠바사] : "리리코"

[리리코] : "네.....?"

 

약하디 약한 마치 가면이라도 쓰려는 듯한 미소. 이래서는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겠지.

어쩔 수 없군 서비스다.

 

[츠바사] : "내가 죽어도 리리코는 부디 살아남아 줬으면 좋겠어"

[츠바사] : "왜냐면 나는 너를...... 아니"

[리리코] : "예......?"

[츠바사] : "미 미안. 아무것도 아니니까 그냥 잊어버려!"

 

당황한 것 처럼 꾸민 채 그녀에게서 얼굴을 돌린다. 이거 원.

 

[리리코] : "아 저, 저기...... 너무 오래 있어서 정말 죄송해요! 또 이야기가 있으면 들어주세요!"

 

단번에 기분이 들떠서는 방에서 나가는 리리코.

아...... 마음에 안 드네.

호스트 같은 방식으로 여자를 속이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사랑이니 우정이니 하는 것이 모래 성보다도 간단히 무너지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지만, 그 시작에 내가 관계되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 사랑은 애초부터가 거짓이니까.

진짜 사랑이라는 것이 무너져 내릴 때만큼의 카타르시스를 맛볼 수 없으니까.

다시금 혼자가 된 방에서 내 안에는 그저 악의만이 있었다. 한결 더러움 없이 순수한, 인간의 악의를 믿는 마음이.

 

...

......

.........

 

[다이스케] : “슬슬 밤인가......”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할 일은 없는데 무슨 게임이라도 하자니 내키지가 않는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그 너머에는 토모에의 사체가 있다.

시간이 흐른 탓인지 이 사실은 부정적인 인상으로서 서서히 내 의식을 침식해 오고 있다.

 

[마이] : “크...... 제법이잖아”

[사쿠라] : “그러는 너도 만만치가 않은걸...... 오목으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은 오랜만이야”

 

완전히 잊어먹고 불타오르고 있는 녀석도 있지만...... 아니, 일부러 명랑하게 행동하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지] : “후딱 정하지 그래. 고? 스톱?”

[츠바사] : “으으윽...... 못 먹어도 고!”

[유지] : “끌끌끌, 점수 났지롱”

[츠바사] : “으아아아아아아악!”

 

얘들은 스케치북으로 또 만든 자작 화투다. 너희 참 기운도 좋다.

 

[다이스케] : “츠바사, 지금 몇 시냐?”

[츠바사] : “으응? 19신데”

[리리코] : “아 그럼 슬슬 저녁준비를 할까요?”

[사쿠라] : “그러게. 이번에는 나도 거들겠어. 재료의 위치도 잘 알고 있고”

[레이] : ‘저도 도울게요’

 

여자 셋이라. 점심때보다 훨씬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야기가 정리되어 리리코와 함께 사쿠라와 레이가 지하실로 내려갔다.

 

[츠바사] : “자~ 그럼 여성분들도 없는데 man's talk나 해볼까”

[유지] : “좋지”

 

그 뒤로 둘이 마이에게 개 맞듯이 맞았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걸 가만 바라보고 있으니 방에서 루나가 나와 내 곁에 앉았다.

 

[다이스케] : “좀 괜찮니?‘

[루나] : “응”

 

그걸로 끝.

그저 눈앞에서 펼쳐지는 바보 같은 소동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

......

.........

 

[리리코] : “많이 기다리셨죠~”

 

시간이 지나 리리코가 돌아왔다.

셋이 안고 온 대접에는 상당히 보기 좋게 만들어진 오르되브르가 담겨 있었다.

통조림과 냉동식품으로 만들어 낸 잡다한 반찬들을 담아낸 것으로 보인다.

좀 김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지만......

기성품이라고는 하지만 깔끔하게 담겨있는 모습을 보니 여자답다는 생각이 든다.

 

[리리코] : “너무 대충한 거라 미안해요......”

[리리코] : “사실 좀 더 제대로 된 걸 준비하려고 했는데 다들 배가 고플 것 같아서......”

[리리코] : “루나도 먹을 수 있는 걸로 준비했으니까, 많이 먹어야 돼”

[루나] : “고마워, 리리코”

 

어라, 이렇게 기름진 걸 루나가 먹을 수 있나......?

나는 조용히 다가가

 

[사쿠라] : “다이스케, 버릇없게 그러는 거 아니야”

 

살짝 튀김을 하나 주워서 입에 넣었다.

 

[사쿠라] : “먹으면 안 된다니까 이 바보야!”

[다이스케] : “......”

 

이건 튀긴 것이 아니다. 살짝 달걀을 묻혀서 프라이팬에 살짝 볶은 것이다.

게다가...... 이거, 고기가 아니잖아? 언제 한 번 먹어본 적이 있다. 콩으로 만들어 고기 같은 식감을 주는 것이다.

탄력이 있는 데다 고기 같은 느낌이 강한데 비해 산뜻해서 맛있다.

분명 이건 건조 상태로 팔리고 있는 것 같던데. 창고에 있던 것을 찾아서 물로 원래대로 돌려 간을 맞춰 조리한 건가.

 

[다이스케] : “이거 엄청 손가는 거 아닌가......?”

[사쿠라] : “알겠으면 리리코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도록. 그렇지 레이?”

 

레이는 미소를 짓고서 끄덕인다.

이거 고마운걸.

 

[다이스케] : “좋아, 그럼 먹을까”

[리리코] : “후후후, 그럼 맛있게 먹어요”

 

모두 둘러앉아 버터플라이 게임에서의 두 번째 식사.

이게 단순한 합숙이었다면. 그리고 여기에 토모에가 있다면......

입 밖에 내지 않고, 그저 마음속에 묻어둔다.

안락하게 흘러가는 식사시간이 비할 데 없는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사쿠라] : “작년 여름이 생각이 나는걸”

 

사쿠라가 그런 소리를 한다.

 

[유지] : “컥, 작년 여름? 그걸 아직 기억하고 있냐!”

[사쿠라] : “바보, 그것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

[다이스케] : “다 같이 갔던 캠프 얘기?”

[츠바사] : “그거 최고였지”

[레이] : ‘무슨 일 있었나요?’

 

올해부터 멤버로 합류한 레이가 모르는 이야기라 다들 한마디씩 꺼내어 본다.

그리운 이야기다.

물건 담당을 정해 놓았지만 캠프장에 도착해서야 유지가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유지] : “소금은 사왔었잖아”

[사쿠라] : “소금만으로 무얼 어쩌라는 말이야!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살지 그래!”

[츠바사] : “그래서 남자 셋이서 산기슭의 마을에 사러 갔었거든. 가게가 되자 문을 닫았던 터라 헛수고였지만......”

[다이스케] : “시골에선 가게 문을 일찍 닫으니 뭐”

[츠바사] : “돌아갈 땐 버스가 없어서 세 시간이나 걸었고......”

[유지] : “아 진짜, 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편의점 주먹밥, 마이가 잡은 물고기, 토모에가 따온 산나물, 루나가 도감을 보고서 따온 버섯, 사쿠라가 챙겨 온 통조림, 바보의 소금.

그걸 지금처럼 리리코가 요리.

그렇게 준비된 저녁식사는 정말 최고로 맛있었다.

옛날 얘기를 하며 때론 웃는다.

더 이상 없는 친구. 그 부재에 대한 고통을 느끼며, 그래도 그것을 입 밖에 내지 않고서.

그것이 이 극한의 상황에서 토모에에게 해줄 수 있는 행할 수 있는 최상의 조문 행사였는지도 모른다.

이렇게 저녁 식사 시간은 느긋하게 흘러갔다.

 

[사쿠라] : “그만 정리하도록 할까”

 

사쿠라는 그렇게 말하더니 일어섰다.

 

[레이] : ‘그래야겠네요. 치울까요?’

[사쿠라] : “츠바사, 지금 시간이?”

[츠바사] : “22시 막 지났어”

[사쿠라] : “그래, 그럼 아직 시간은 남은 거네......”

 

[수호자]와 [교환자] 덕분에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지만, 깜빡 시간을 잊었다가 죽어버리는 상황만큼은 피해야 한다.

 

[다이스케] : “리리코, 정리하는 건 내일이라도 괜찮지 않을까?!”

[리리코] : “아뇨. 설거지 하는데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니니 오늘 중으로 해두고 싶어요”

[다이스케] : “그래. 그럼 혹시 모르니까 나도 같이 가자”

[레이] : ‘저도 갈래요’

[사쿠라] : “으~음...... 설거지 하는데 네 명이나 필요하지는 않겠고”

[사쿠라] : “그럼. 남은 처리는 다이스케에게 맡길게”

[다이스케] : “오냐”

 

그래서 나와 레이, 리리코는 지하실에서 뒷정리를 하고 그 이외의 사람들은 이르지만 방으로 들어가는 것에 모두가 동의했다.

우리도 30분도 채 걸리지 않아 별 문제 없이 정리를 끝내고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럼...... 나는 이제 믿음직한 후배와 중요사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야만 한다.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그고

노트북을 열었다.

 

전용모드로 가서 레이가 로그인 해 있는 것을 확인하며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어째 어제보다 타이핑 속도가 빨라진 것 같다. 하긴 그렇지 않으면 곤란하다. 상담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으니까.

나는 우선 종일 끌어안고 있던 검은 장갑에 관한 이야기를 레이에게 털어놓았다.

모르는 사이에 방 안에 던져져 있었다는 것. 하마터면 그것을 루나에게 들킬 뻔 했다는 것.

조금 시간이 지나고 답장이 왔다.

 

[레이] : 그거...... 정말이에요?

[다이스케] : 그래. 지금도 책상 서랍 안에 들어 있어.

[레이] : 그렇단 말이죠......

[다이스케] : 이건 [주모자]가 날 함정에 빠뜨릴 셈이라고 봐야하나?

 

내 의문에 대해, 조금 있으니 대답이 돌아왔다.

 

[레이] : 최대한 호의적으로 해석해보면, 겁이 나 처분하기 힘들어져 다른 사람의 방에 집어넣었다...... 그 정도일까요?

[레이] : 그 이외에는 방을 틀렸다거나......

[레이] : 아뇨. 어쨌든 간에 다이스케 선배를 위해서 한 짓도, 선배를 아군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한 것도 아니네요

[레이] : 위험하셨네요

 

역시,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나.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주모자]가 악의를 가지고 한 행동이라고 보는 게 가장 가능성이 높겠지.

 

[다이스케] : 역시 [주모자]인가......

[레이] : 다이스케 선배. 검은 장갑을 가지고 있는 건 [주모자]뿐만이 아니지 않나요?

[다이스케] : 뭐?

[레이] : 규칙상으로는 [은둔자]도 [주모자]와 같은 장갑을 가지고 있다고 적혀 있어요.

 

그러고 보니 그런 내용도 있었지. 그렇다면...... 놓아둔 건 [주모자]나 [은둔자] 둘 중 하나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 [은둔자]라는 게 또 알아먹기 힘들다. 약과 독을 가지고 [주모자]의 타겟을 빼돌릴 수 있는 역할. 도대체 왜 이런게?

어라. 그렇다면

 

[다이스케] : 혹시, [주모자]가 아니라 [은둔자]가 토모에를 죽였다고 볼 수도 있지 않아?

[레이] : 그럴 수도 있네요.

[다이스케] : 만약 했다면, 어째서 그런 짓을?

[레이] : 사람이 많이 죽어서 네 명 이하가 남게 된다면 홀로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요.

 

괜히 더 기분만 나쁜 상상이다.

 

[레이] : [은둔자]에 대해선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 장갑 얘기부터 계속해요

[레이] : 일단은 나쁜 상황을 상정해서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범인에게 분명히 악의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레이] : 방법부터 따져보죠. 선배는 아침에 남자 셋이서 토모에 선배의 방으로 갔고, 거기에 루나가 와서 츠바사 선배와 나갔다고 했죠?

[다이스케] : 그랬을 거야

[레이] : 그 뒤에 모두 로비에서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식사 시도가 있었고...... 그리고 장갑을 발견했다.

[다이스케] : 그래

[레이] : 그렇다면 장갑은 아침 일찍 던져졌다고 밖에 볼 수 없겠네요. 다이스케 선배가 토모에 선배의 방에 머물러 있는 사이에 말이에요

 

그렇군. 그 잠깐 사이에 그런 일이......

아니, 그럼 그 직후에도 모두 깨우러 돌아다녔으니......

 

[다이스케] : 그 시점에서 기절해 있었던 리리코와 사쿠라는 불가능하지 않나?

[레이] : 그렇겠죠. 두 사람이 정말로 기절해 있었다면.

 

대답을 하려다가 손이 멈췄다.

정말로 기절해 있었다면?

 

[다이스케] : 진짜가 아니라면 뭔데

[레이] : 분명하게 말하자면 그런 [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얘기에요.

[레이] : 악의를 품고 있는 상대라면 용의를 벗기 위해 가능한 한 모든 방법을 이용할 테니까요

[레이] : 실제로 그 시점에선 다이스케 선배와 함께 있었던 유지 선배를 제외한......

[레이] : 모두가 장갑을 선배의 방에 던져놓고 도망갈 수 있다고 생각해야 할 거에요

[레이] : 참고로 저도 가능한데. 저도 의심하시나요? (^-^;)

 

이건...... 농담하는 거겠지?

 

[다이스케] : 괜히 복잡해지니 넌 빼고 싶은데

[레이] : 예. 저도 물론 하지 않았어요. 쭉 노트북이랑 눈싸움 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보니 나나 레이나 한숨도 자지 못했지.

그걸 떠올리니 갑자기 피로와 함께 졸음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곤란한데. 오늘은 오전 1시까지 깨어있어야겠는데.

 

[다이스케] : ......레이 넌 괜찮아? 졸리지 않아?

[레이] : 실은 아까 꾸벅꾸벅 졸다가 키보드에 얼굴을 박았어요......

 

괜찮냐?

 

[다이스케] : 조금만 더 힘내자. 오늘 1시의 결과만큼은 지켜봐야지.

[레이] : 어떻게 볼 생각인데요?

[다이스케] : 어떻게냐니, 어제처럼 방송이 있을 거 아냐?

[레이] : 아마 그건 어제에 한정된 일일 거예요

[레이] : HELP에 중계되는 건 [희생자]의 특별한 능력이라는 식으로 적혀 있었으니까요

 

아...... 그러고 보니 그런 내용이 있었던 것 같다.

 

[다이스케] : 그럼 내일 아침이 되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건가?

[레이] : 실은 확인할 방법이 있긴 해요. [고발용 윈도우]를 열어 보세요

 

나는 시키는 대로 터치패드를 건드려 고발자용 윈도우를 열었다. 생각해보니 이걸 연 건 처음이다.

표시된 윈도우는 하얀 배경에 검은 문자와 선이 그어져 있는 간소한 형태였다.

[누구를 고발하시겠습니까?] 라는 커다란 문자 아래로 참가자 전원의 이름이 표시되어 있다.

[고발]하고 싶을 때는 의심스러운 녀석의 이름을 왼쪽에 있는 버튼을 클릭하면 되는 듯하다.

아아. 그렇군. 레이가 하고자 하는 말을 이해했다.

리스트에 있는 9명 중, 8명의 이름 오른쪽에는 ‘생존’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하지만 리스트 가장 아래에 있는 ‘칸자키 토모에’만이 ‘사망’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름 왼쪽에 [고발]버튼이 없기에 고발할 수가 없다.

 

[다이스케] : 봤어. 그러니까 죽는 사람이 생기면 여기 표시가 된다는 얘기지?

[레이] : 그래요. 어제 그 방송이 있은 바로 직후에 확인해보니, 이미 표시가 [사망]으로 되어 있었어요

[레이] : 실시간으로 표시가 변경된다고 보면 되겠죠

[레이] : 즉 1시부터 2시 사이에 아무도 ‘사망’으로 바뀌지 않으면 [수호자]와 [교환자]의 연계는 성공한 거에요

 

아직 세 시간 넘게 남았나.

피로가 심해진 것 같았지만 우리는 일단 안전할 터.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하다.

루나가 룰의 결함을 까발리고, 더욱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정체까지 밝혀준 덕이다. 오늘의 MVP는 틀림없이 루나다.

 

[레이] : 이야기가 좀 샜네요

[레이] : 좀 기분이 상할지도 모를 이야기인데, 괜찮을까요?

 

갑자기 그런 문자가 표시되어 나는 또 다시 말이 막혔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아, 그래 검은 장갑.

 

[다이스케] : 괜찮아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내 문제니까.

 

[레이] : 루나는 [수호자]와 [교환자]는 게임의 결함이라고 말했었지만, 저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어요

[다이스케] : ......어째서? 되기만 한다면 이기는 데다, 확실한 승리법이 있다면 그 게임은 이미 망한 게임 아닌가?

 

격투게임이라도 마찬가지다.

특정 기술의 조합이 너무 강해서 그걸 반복하는 것만으로도 상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진다...... 그런 경우가 가끔 있다.

그런 게임은 망한 게임. 결과가 뻔 하기에 재미 없으니 망한 거나 다름없다.

그러나, 레이의 생각은 다른 듯하다.

 

[레이] : 정말 되기만 하면 이길 수 있는 걸까요? 제가 보기에는 그렇지 않아요

[레이] : 다이스케 선배. 이 게임은 어디까지나 [주모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어요

 

그와 같은 이야기를 아침에 사쿠라도 했다.

 

[다이스케] : 플레이어의 목숨을 쥐고 있어서?

[레이] : 그래요. 게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데 있어 [주모자]는 리스크가 없는 반면, 플레이어는 전원 목숨을 걸어야 돼요

[레이] : [교환자]나 [수호자]는 얼마든지 스스로의 목숨을 지킬 수 있지만, 연계를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포기해야만 해요.

[레이] : 이걸 이용해 양쪽 중 어느 쪽에건 [연계가 실패해서 죽을 가능성]이 있다는 걸 상기시키면......

[레이] : 그 플레이어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 연계를 포기하고 자신을 지킬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어요

[레이] : 그 만큼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카드는 중요해요. 그걸 일방적으로 쥐고 있는 [주모자]는 너무 강하고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평소 얌전하기만 하던 레이가 이렇게 깊이 생각하고 있다는 것에 놀랐다.

아니...... 놀랐다기보다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다고 하는 게 맞을지도 모르겠다.

 

레이의 예측은 항상 좋지 못한 상황을 가정하고 있다.

[주모자]가 악의에 가득 찬 교활함을 가지고 있어, 우리의 파멸을 노리고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전제.

안전하기 위해서는 분명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그런 마음을 이해는 하겠지만......

오히려 내게는 레이가 과도하게 악의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고 보였다.

레이가 멤버가 된 기간이 가장 짧다는 점이 작용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에 대한 시선이 너무나도 냉철하다.

 

[다이스케] : 그렇게까지 생각하는구나

 

무심코 그만, 그렇게 쓰고 말았다.

친구에 대한 쓴소리가 싫다. 그런 생각이 너무 앞섰다고 부정할 순 없다.

 

그 메시지를 송신하고.

...

......

... 아무런 대답도 돌아오지 않게 되었다.

 

다시 한 번 자신이 보낸 문장을 읽어본다.

‘그렇게까지 생각하는구나’

 

[다이스케] : “이거, 너무 심하게 말한 거 아닌가......”

 

당장에 자신의 말이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 왔다. 분명히 이런 말은 친구에게 할 말이 아니다......

레이는 소중한 친구다. 그리고 이 게임에 있어서 파트너이기도 하다.

더욱이 내 주의를 환기시켜주기 위해 이렇게 많은 글을 치고 있다. 당연히 나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는 거다.

 

그런 상대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다이스케] : 미안하다...... 친구니까 의심하고 싶지 않다니...... 그냥 고집부리는 거겠지

[다이스케] : 날 생각해서 충고해주는 건 알겠어. 다만 아무리 그러려고 해봐도 부정하고 싶은 생각밖에 안 들어서......

[다이스케] : ......미안. 너무 생각 없이 말했어

 

문자만으로 얼마나 이해시킬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나름의 성의를 다해 키보드를 두드렸다.

대답이 없다.

어이가 없어서 자리를 뜬 건지도 모르겠다.

새삼 이제와 자신의 경솔함에 후회하고 있을 때......

 

[레이] : 미안해요

 

화면에 표시된 문자

또...... 또 이런다.

 

[다이스케] : 도대체 왜 사과를 하는건데? 사과는 내가 해야지!!

 

너무 혼란스러웠던 나머지 말투가 강해진다. 아아아! 또 실수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빨리 대답이 돌아왔다.

 

[레이] : 그럼 그렇다는 걸로 해요. 아 정말. 여러모로 생각해 뒀는데, 너무해요(ㅠ_ㅠ)

 

조금 가볍게 대답했다.

만회한 건가......?

 

[레이] : 그럼 이번에는 제대로 끝까지 들어 주실래요?

[다이스케] : 그래. 계속하자

 

그렇다. 결국 아직 그녀의 결론을 들어보지도 못했다.

 

[레이] : 그럼 계속 할게요. 아까 말했던 대로 플레이어간의 연계는 [죽음에 대한 공포]로 충분히 무너질 수 있어요

[레이] : 그렇지만 적절한 플레이어에게 [죽음]이라는 카드를 내밀지 않는 한, 별 의미가 없어요

[레이] : 모두의 앞에서 부정적인 발언만 해봤자, 효과는 적을 테니까요......

[레이] : 만약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플레이어의 역할을 추측하여 확정한 후에......

[레이] : 그 사람과 개인적으로 접촉해서 [죽음에 대한 공포]를 부추길 거에요

[레이] : 오늘의 연계가 성공해서 죽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이지만......

[레이] : 만약 성공한다면 이후로 개인적인 접촉을 배제하도록 신경 쓰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레이] : 현재 장갑 문제로 보아 누군가 뒤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으니......

[레이] : 개인의 움직임만 막는다면 누군가 의심에 사로잡혀 폭주하는 일은 없지 않겠어요?

 

그렇군.

혹시 분열을 조장하려는 녀석이 있다 해도, 그것을 미연에 막아보자는 얘긴가.

낮에 츠바사가 얘기했던 3인 이상의 공동행동과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방식의 생각은 중요하다고 본다.

 

[다이스케] : 레이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아까 괜히 지레짐작으로 안 좋은 소리 해서 미안해.

[레이] : 괜찮아요. 저도 사실 다이스케 선배에게 미움 받을 만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고요(^-^;)

 

어쩐지 죄다 꿰뚫고 있는 것만 같다.

 

[레이] : 납득해주셨으니 제안 하나 할게요. 다이스케 선배, 이제부터 우리는 가급적 개별행동을 하도록 해요

[다이스케] : 그건 또 왜?

[레이] : 우리 둘만은 서로가 [주모자]도 [배신자]도 [은둔자]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어요

[레이] : 그저 같이 있는 것보다는 나뉘어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요

 

그래. 그 제안은 확실히 논리적일뿐더러 옳다고 생각해.

하지만 나는 거의 반사적으로 대답하고 있었다.

 

[다이스케] : 위험하지는 않을까? 네가 [주모자]와 행동을 함께 할 확률이 올라가잖아

 

그렇게 쓰며 나는 스스로의 모순을 깨달았다.

친구를 의심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그 안의 있을 [주모자]가 레이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라고 의심하고 있다.

스스로의 주장과 감정이 전혀 정리되지 않는다......

 

[레이] : 걱정해 주시는 거에요?

 

어느새 답장이 와 있었다.

그렇다. 나는 걱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친구를 믿고 싶다는 마음을 상회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이] : ......기쁜데요

 

머릿속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들은 듯하여 그만 깜짝 놀란다.

 

[레이] : 괜찮아요. 다이스케 선배가 있는 이상, 저는 이상한 말에 휘둘리지 않을 테니

 

그것도 왠지 이상한 의미로 보이지만 분명 기분 탓이겠지.

 

[레이] : [주모자]가 직접적으로 위해를 가하는 건 어지간히 절박한 상황이 왔을 때겠죠.

[레이] : 그 또한 3명 이상이 함께 동행하고 있다면 기본적으로 괜찮을 거에요

[레이] : 둘이 있을 때 암살당해서 목격자가 없게 되는 경우가 가장 위험할 테니

 

여전히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아이군......

다만 내가 가장 걱정하고 있는 건...... 레이가 목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다.

비명을 지를 수 없다면 [주모자]와 [배신자]에게 둘러 쌓였을 경우...... 아무런 행동도 취할 수 없지 않은가.

 

[레이] : 괜찮아요. 파트너를 좀 믿으세요!

 

...이렇게까지 말하니 마냥 반대하기도 힘들다.

이것 또한 친구에 대한 신뢰.

 

[다이스케] : 이것만큼은 부디 약속해줘. 절대로 무리하지 않겠다고

[레이] : 물론이죠. 믿어줘서 고마워요

[다이스케] : ...... 그나저나 레이 너 참 여러모로 생각하고 있구나. 좀 의외인데

[레이] :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길래(^-^;) 저 사실 제법 성격이 치사하다구요

 

더보기

[레이] : (......그래. 치사하고 더러운 망가진 인간이다)

[레이] : (분명 아까 전에 오빠는 내 그런 단편을 본 것이겠지. 그래서 그런 소리를 한 것이겠지)

[레이] : (난 역시 이 이상 망가져서는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오빠에게 미움받고 말 거야......)

[레이] : (......그렇지만, 어쩌지. 사쿠라 선배는 오빠를 좋아하고, 유지 선배는 사쿠라 선배를 좋아하는데)

[레이] : (이 게임 중에 그게 드러나 버리면 분명히 모두의 사이에 금이 가고 말겠지......)

[레이] : (사람을 죽여도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심리상황을 만드는 게임. 괜한 연애감정은 방해만 돼. 그건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어)

[레이] : (그러니까, 난 무슨 일이 있어도 망가질 수 없어)

 

[레이] : (좋아하는데?)

 

[레이] : (좋아한다고 싫어한다고 그런 소리는 이 게임 중에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

[레이] : (그러니까 사쿠라 선배도 유지 선배도, 혹시 모르겠지만 마이 선배나 리리코 선배도 하지 말았으면 해. 아니, 못하게 할 거야)

[레이] : (분위기가 그렇게 되어버리는 것도 신경 쓰지 않으면 안 되겠어)

 

[레이] : (그게 풀어가기가 좋잖아?)

 

[레이] : (......그 어떤 일이 있다 해도 나는 모두에게 있어 올바른 행동을 할거야)

 

[다이스케] : 하하...... 그거 무섭네

 

하여튼 간에 일단 내일 이후의 방침은 정해졌다.

남은 건 루나와 [수호자]가 잘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 뒤로는 느슨한 분위기에서 잡담이 이어졌다.

사실 그저 오전 2시까지 피로와 불안감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시간은 좀처럼 지나가지 않는다.

...

......

.........

 

더보기

[마이] : "음~ ...... 으음~ ......"

도무지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걸.

이때까지 이런 적은 없었는데.

토모에를 죽인 걸 후회하고 있다......?

에이, 설마. 그런 건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죽은 사람의 헛소리에 이렇게까지 끌려 다니는 것 또한 있을 수 없는 일.

 

[루나만은 살려줘]

 

토모에가 꼴사납게 목숨을 구걸하고 마이를 저주하며 죽어갔다면 이렇게 동요하는 일은 없었을 텐데.

결국 아빠 이외의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 나는 저주를 하건 어쩌건 아프지도 가렵지도 않다.

 

그렇지만, 목숨과 바꿔 부탁을 한다.

그런 건 처음이니.

아아, 도무지 개운하지가 않아!

 

오늘은 [주모자]도 일단 움직일 테니 깨어나 있는 게 좋을 것 같지만.

어쩔까. 약 써 두는 게 좋을까.

지금 내게는 해독제가 들어간 두 개의 주사기가 있다. 그 이유는 내가 심판자이기 때문.

일단 심판자 플레이어에게는 [주모자]에게 당해도 무사할 수 있도록 주사기가 주어진다.

기본적으로는 자기용으로 독에 당해도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게임상으로는 패배.

그 뒤로는 방의 문이 잠겨서 게임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것.

약은 사전에 사용해둬도 24시간은 충분히 효과가 있다.

하긴 애초에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사용해둬야겠지만. 근이완가스를 마셨다가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으니.

 

그렇지만 나는 이걸로 좀 재미있는 일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아직 사용하지 않고 있다.

애초에 이 독이라고 해야 하나, 보존액이라고 하는게 올바른 표현이지만, 방해액의 관계성은 아직 모른다고 아빠가 말했다.

고농축의 방해액을 사전에 투여하면 고정반응자체가 일어나지 않는다.

완전히 고정된 다음 투여해도 대게 3분 정도가 데드라인으로 소생할 수 없다.

다만 방해약의 효능은 개인에 따라 차이가 있고 그다지 인체실험을 할 여유도 없었다는 탓에 데이터가 매우 부족하다.

그러니까 이 약을 전원에게 나눠도, 어쩌면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하면 아빠가 조금은 놀라까.

그렇지만 잘못했다가 모두 죽어버리면 완전 의미도 없고......

아아, 뭔가 딱 떠오르는게 없네.

 

[루나만은 살려줘]

 

그렇다고 눈 감아버리면 그게 떠오르고......! 정말!

아 그래! 죽여서 미안하게 됐다구 토모에!

 

[마이] : "살려주면 될 거 아냐 살려주면!"

 

나는 노트북을 조작하여 금고를 열었다. 검은 장갑과 두 개의 주사기 통에 하나의 주사기. 그것과 음... 다른 건 지금은 필요 없나.

왼쪽의 주사기통에는 약이라고 적혀 있다. 오른쪽에는 독이라고 적혀 있지만 이건 이미 토모에에게 사용하고 없다.

하여튼 간에 약 주사기를 꺼내 들고 메모 패드로 향한다.

한장을 찢어 메시지를 적는다.

 

「약입니다. [은둔자]로부터......」

 

이정도면 충분하겠지

괜히 줄줄이 늘어놓아봤자 괜한 의심만 살 테고, 내가 한 거라고 들키는 것도 좀 그렇다.

먼저 게임을 끝낼 수 있는 [은둔자]는 다른 플레이어로부터 미움을 사기 쉬우니까.

 

시각은 23시 50분.

자유행동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잘 됐다. 지금이라면 나가더라도 누군가와 마주칠 리도 없겠지.

 

문을 열고

방을 나선다.

예상대로 로비에는 아무도 없다.

루나의 방 앞에 서서, 주사기와 메시지를 적은 용지를 문 앞에 살짝 내려놓았다.

휴우...... 그럼......

 

간닷~ 마이 스페셜 해머 펀~~~~치!

쾅! 쾅! 쾅! 오오 열라 아프다! 내 소오오온!

 

그럼 대피다. 루냥이 이상하게 생각하고 나와보기 전에 돌아가야지. 옆 방이라 다행이야.

방으로 돌아가 문을 닫아 잠근다.

나 참...... 이 문 방음성이 너무 좋아서 어지간해서는 안에 알리기가 힘들단 말이야......

어쨌든 간에 이걸로 할 만큼은 했다.

약을 못 본다거나 혹은 봤어도 독이라고 생각한다 한들 그건 마이 탓이 아니야.

아마 지금 가장 표적이 되기 쉬운 건 루냥이겠지만 친구를 생각하는 마음이라는 게 도와주는 거였지?

[수호자]와 루냥의 연계가 잘만 된다면 게임이 길어져 재미있는 일이 생길지도 몰라. 아빠의 의도를 찌를 수 있다면 좋겠는데.

 

후우. 이제 겨우 좀 개운한 마음으로 쉴 수 있겠어.

잘 생각은 없지만 잠깐 쉬자.

침대에 몸을 뉘여 가볍게 눈을 감고서......,

 

[루나만은 살려줘]

 

어째서.

어째서, 사라지지 않지......!!!

 

[마이] : "우와아아아아아아!!!!"

[마이] : "짜증나게 하지 마아!!!"

[마이] : "저리 가란 말이야!!!"

[마이] :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져 없어지라고오오오오오!!"

 

어차피 완전 방음이라는 생각에 나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목이 쉬도록 소리쳤다.

 

더보기

[루나] : "이건 뭐지......"

 

문 앞에는 주사기와 찢어진 메모지.

메모에 적혀있는건

"약입니다, [은둔자]로부터"

 

어쨌든 일단 그것을 주워 방으로 돌아왔다.

 

[루나] : "무슨 생각인 걸까......"

 

이렇게 수상스러운 걸 약이라니, 믿을 수 있을 리가 없다.

정말 [은둔자]인지 아닌지조차도 알 수 없는 노릇이다......

고민하고 있는 사이 12시가 된 것 같다. 문이 철컥 하고 소리를 내며 잠긴다.

혹시 모르니 나는 노트북에서 룰을 확인했다.

 

주사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주모자]와 [은둔자] 두 사람 뿐.

[은둔자]는 독의 효과를 1번만 막을 수 있는 예방약을 하나 가지고 있다.

 

흐음.

[은둔자]가 좋은 사람이라면 [교환자]라는걸 밝힌 나를 걱정해서 줬을 것이다.

[은둔자]가 나쁜 사람이라면 선의로 나를 위장해서 나를 속여 죽여 클리어에 다가서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 [은둔자]가 아니라 [주모자]가 이것을 뒀을 가능성도......

[수호자]와 협력하여 밤을 완전한 시간으로 만들려는 나를 없애려고 하는 것이겠지.

 

[주모자]?

아니, 더 이상 역할로 부르는 건 무의미.

나는 봤는걸.

토모에를 죽이던 녀석의 장갑을 다이스케가 책상 서랍에 숨기는 모습을

 

토모에를 죽인 건

다이스케.

토모에를 죽여 놓고

그런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다니.

토모에를 위하는 척

뻔뻔히 말하다니.

용서 못해.

용서 못해......!

반드시 죽여버릴거야!!!

그러니까 나는 그런 녀석이 바라는 짓을 하진 않을 거야.

어째서 그 녀석은 [수호자]와의 연계에 대해 호의적이었지? 그건 간단. 그건 아마 녀석이 이미 [수호자]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겠지.

아마 레이나 사쿠라 중 하나가 [수호자]. 둘 다 다이스케를 좋아하니까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

그래서 나를 지키지 못하도록 해서 오늘 그 녀석은 나를 죽이러 온다. 그럴 게 뻔해.

 

나는 노트북을 조작해서 [교환자]의 능력을 설정했다.

스스로 타겟이 되는 것이 아닌, 자신의 대타가 되는 사람을 고른다.

물론, 선택한 것은

다이스케.

 

룰을 몇번이나 봤다.

[주모자]의 타겟이 되었을 때, [주모자] 본인을 대타로 선택하면 [주모자]가 죽는다.

 

이걸로 나는

토모에의 바람을 이룬다.

이걸로 나는

토모에의 복수를 한다......!

 

다이스케가 [주모자]라면 이런 주사기를 굳이 가져다 둘 필요가 없다.

메모대로 [은둔자]가 놓아둔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겠지.

 

그럼 이건 진짜 약일까?

그럴 리 없어.

이런 상황에 자길 위해 약을 사용하지 않을 리가 없는걸.

그러니까 이건 독. 자기만 살아남기 위한 [은둔자]의 함정.

[주모자]도 [은둔자]도 악랄하다. 이렇게 간단히 배신하다니......!

용서 못해......!

만약에 다이스케를 죽여서 게임이 끝난다 해도 [은둔자]는 반드시 찾아내 따끔한 맛을 보여줄 거야......

 

그렇지만, 우선은 너야 다이스케.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나는 주사기를 든 채 바라봤다.

이건 무기.

만에 하나, 다이스케가 오지 않더라도...... 이걸로 죽여버린다.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죽여 줄게..........

Zzzz......

 

 

더보기

[츠바사] : "이거 원. 오늘 하루도 장난 아니었다"

겉으로 보면 전혀 움직임 없는 하루였을지도 모르지만.

[주모자]는 제법 바빴다고.

그런 이유로다가 는 무슨. 이유랄 것까지는 없지만.

 

오늘은 쉰다.

타겟은 리리코로 정해뒀다. 그 만큼 고생했는데 리리코가 남을 지키는 일은 없겠지.

뭐 안 지키면 안 지키는 대로 확 죽여버리면 그만이지만.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말은 필요 없어. [수호자]같이 위험한 말이라면 더더욱.

 

어째서 하루를 그냥 흘려 보내려고 하느냐, 하면.

기분적인 문제도 분명 있다. 좀 치지기도 했고, 녀석들에게 허무한 기쁨을 맛보게 하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내부 분열을 일으킨 인간관계를 끌고 가는 것이다.

잘만 하면 오늘 밤, 루나와 리리코가 다이스케를 배신한다.

하지만 녀석들은 눈치채지 못한다. 배신자를 믿은 채, 그릇된 인식 하에 다음 날 작전을 실행할 수 있게 된다.

 

더욱이 오늘은 한 건 더 손을 써 뒀다.

[배신자] 유지에게 명령을 내렸거든.

어째서 유지가 [배신자]라는 것을 알 수 있었냐면, 간단히 말해 첫날 밤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내려놓았기 때문이다.

 

「모두가 있는 앞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잊었다고 말해라」

 

유지는 그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나는 분명히 그 말을 듣고, [배신자]를 특정했다.

오늘 밤 녀석에게 내린 명령은 상당히 치명적인 것이다.

내일 안심하고 나온 녀석들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기대되는걸.

 

그럼...... 1시까지 느긋하게 기다려 볼까.

...

......

.........

 

[다이스케] : “......”

나는 신 같은걸 믿지는 않지만, 지금은 멸치 머리에라도 매달리고 싶은 심정이다.

내일도 애들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수호자]와 [교환자]의 연계는 성공했을까.

방금 막 노트북의 시계는 오전 1시를 가리켰다.

 

[레이] : 시간이 됐어요.

[다이스케] : 그러게

 

레이와의 채팅은 끝에 이르러서는 계속해 서로 시간을 확인하는 짧은 메시지만을 주고받게 되었다.

둘 다 너무 지친 탓이다.

그래도 이 1시간만큼은 고발용 윈도우의 변화를 지켜봐야만 한다.

 

5분이 지났다.

변화는 없다.

 

10분이 지났다.

변화는 없다.

 

20분......

......30분......

......40분......

시간이 흐를수록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짧은 메시지를 주고받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50분......

55분......

56분......

57분......

58분......!

 

이쯤 되면...... 더 이상 [주모자]도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보아도 좋을 터......!

 

59분.

......

...... 오전 2시.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이스케] : 만세!! 레이 잘 됐잖아!!

피로도 완전히 잊고 흥분해 취해 키보드를 두드렸다.

대답이 없다.

 

어 어라?

 

[다이스케] : 레이?

[다이스케] : 레이?

[다이스케] : 레이 괜찮니?

[다이스케] : 야~ 임마 장난치지 말라고?

 

설마.

설마설마설마.

 

머리 속이 무시무시한 광경으로 뒤덮여 간다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간다

변질되었던 토모에의 모습이...... 다시 떠오른다.

 

[다이스케] : “장난......”

[다이스케] : “장난이지!!!”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소리치며 나는 고발용 윈도우로 눈을 돌린다.

새로운 사망자가 표시되어 있지 않다!

그럼 레이는 왜!

 

[다이스케] : “레이! 레이 정신차려봐!!”

 

반쯤 공황상태에 빠져 키보드를 두드려서

내 메시지로 페이지가 가득 찰 무렵.

 

[레이] : 아 저기, 정말 미안해요

 

이제는 익숙할 정도로 보아온 대답이 돌아왔다.

 

[다이스케] : 레이!? 도대체 무슨 일이야!

[레이] : 아...... 그러니까요......

[레이] : 안심했더니......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나는 힘이 빠져 책상에 그대로 퍼져버렸다.

 

[레이] : 미안해요......

 

그래. 이번만큼은 확실히 사과를 받아야겠어.

내가 했던 걱정을 돌려받고 싶을 정도다.

 

[레이] : ......그래도 다행이네요

[레이] : 이걸로 조금은 안심하고 쉴 수 있겠네요

[다이스케] : 그러게...... 오늘은 정말 수고 많았어

[레이] : 그만 잘래요?

[다이스케] : 그러자...... 레이 너는?

[레이] : 어젯밤부터 계속 이 모양이니...... 물수건으로 몸이라도 닦고 자야겠어요

[레이] : 푹 쉬셔야 돼요

[다이스케] : 그래 고마워. 너도 잘 자

[레이] : 잘 자세요(^-^)

 

채팅 창을 닫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수호자]는 제대로 루나를 지켜준 것이다.

그만 한계다. 이대로 잠들 것만 같다.

졸린다기 보다 몸이 완전히 지쳐서 말을 안 듣는다.

겨우 몸을 일으켜, 다가가 침대에 쓰러져서......

나는 죽은 듯이 잠에 빠졌다.

 

다음 편 계속

'게임 > 잿빛의 버터플라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잿빛의 버터플라이 5편  (0) 2024.12.01
잿빛의 버터플라이 4편  (0) 2024.12.01
잿빛의 버터플라이 2편  (0) 2024.12.01
잿빛의 버터플라이 1편  (0) 2024.12.01
HELP - 역할 설명  (0) 2024.1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