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잿빛의 버터플라이

잿빛의 버터플라이 7편

마루설아 2024. 12. 1. 22:20

[사쿠라 시점]

 

[사쿠라] : “......”

 

다이스케의 상처를 치료하기에 앞서, 일단 방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마이도 화장실에 가겠다니.

아무리 그래도 분할도 되어 있지 않은 다이스케의 방에서 볼일을 보지는 못하겠다. 상상도 못하겠어.

......

나는 방으로 돌아가 문을 잠궜다.

 

[그런 적 없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꼭 그렇게 결론을 내리게 하려는 태도가...... 무섭단 말예요!]

[만약에만약에 다이스케 군이 [주모자]라면 저희 모두 다이스케 군이 시키는대로 하게 되는 거니까......]

 

나도 안다.

그건 내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다이스케를 의심하고 싶지 않은 내가.

다이스케는 누가 봐도 ‘결백’하다.

친구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몸을 사리지 않고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게다가 다이스케는 서서히 생각을 바꾸고 있다.

처음에는 마냥 낙천적이었지만, 친구를 의심해서라도 친구를 구하겠다고 필사적으로.

그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는 뜻.

그리고 그것은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주모자]를 잡아서라도 살아남겠다는 강한 의지가 없다면 할 수 없는 성장.

그저 제자리걸음 하고 있는 나와는 다르다.

 

그렇지만.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면.

지금까지 10년 이상 내가 보아온 다이스케의 모든 것이 환상일 뿐이라면.

그런 극히 적은, 말도 안 되는 가능성. 가슴에 박힌 작은 가시.

나를 받아준 지금이기에 더욱, 그것이 죽도록 아프다.

 

솔직해지고 싶다.

모조리 다 잊고, 다이스케의 품에 뛰어들고 싶어.

그렇지만 가슴의 그 가시가 너무나도 아파서, 그럴 수가 없어.

 

[사쿠라] : “......”

[사쿠라] : “이것은 꼭 필요한 행위”

 

내가 다이스케를 믿을 수 있게 된다면, 게임 전체에 있어서 유리할 터.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나는 [진단자]용 툴을 기동시켜서

다이스케를 진단했고

다이스케가 [공유자]라는 것을 알았다.

 

미소가 넘쳐나왔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는 미소가.

 

[사쿠라] : “다이스케......”

[사쿠라] : “다이스케......! 다이스케! 다행이야......!”

 

이제, 의심 같은 거 하지 않아도 돼.

이제, 안심하고 안길 수 있어!

그 품에 안겨도 숨겨놓았을지 모를 주사기를 겁내지 않아도 돼......!!

 

그렇지만.

[공유자]라면

다른 하나는 누구지.

 

[사쿠라] : “......”

[사쿠라] : “레이?”

 

생각해 본다.

다이스케와 레이가 서로의 눈을 살피는 것처럼 보였던 것을.

나는 나름대로 공정하게 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먼저 고백해버리게 되었고.

결국 나는 새치기를 하고 만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나는 그 때, 죽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렇지만 살아 남았고.

다이스케는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

그러니까 이젠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하는 수밖에 없잖아!

 

아무튼 간에.

레이가 만약 [공유자]라면 그 부분은 납득이 된다. 남들 몰래 게임에 관련된 모종의 상담을 했던 것이겠지.

오히려 레이는 [공유자]라는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면서도, 나 몰래 다이스케와의 관계를 발전시키지도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아까 전에 문을 막고 있을 때, 나를 불러주었다.

자기가 직접 했더라면 다이스케랑 밀착할 수 있었을 텐데.

내게 양보한 것이다.

그런데도...... 난 아까 모두의 앞에서 그렇게 부산을 떨고 말았다. 분명히 다들 눈치챘을 것이다.

 

창피해.

그렇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레이는 미소를 보여주었다.

레이는 내게 다이스케를 양보한 것이다.

너무나도 미안한 감정이 생겨난다.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기뻐서 어쩔 줄을 모르겠다.

레이와의 삼각관계는 이제 청산된 것이다.

 

[사쿠라] : “후후......”

[사쿠라] : “아하하......”

[사쿠라] : “아하하하하하하! 후후훗 쿡쿡, 우후후후후후......”

 

홀로 그렇게 웃었다.

 

[사쿠라 널 좋아한다고!]

 

또 다른 삼각관계.

또 다른 소꿉친구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나는 계속해서 웃었다.

 

[다이스케 시점]

 

[다이스케] : “어”

 

방에 누워서 몇 분정도 있으니까 사쿠라와 마이가 왔다.

 

두 사람은 내 상처를 치료해주었다.

사실 거진 사쿠라가 혼자서 하긴 했지만.

마이는 노트북 앞에서 알짱대거나 농담이나 하더니만 곧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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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분위기 좋으니까 괜히 불편하네......)

[마이] : (......지금 나 짜증내는 건가......)

[마이] : (......혹시나 질투! 에이, 그럴 리가......)

[마이] : (에이~ 알콩달콩 하려면 얼른 하라규! 자는 척 하면서 다 봐줄 테닷!)

 

이런 얼빠진 녀석이 [주모자]일 리는 없나.

 

모르겠다.

판단하지도 못하겠고 해서도 안 된다.

용의자는 마이, 츠바사, 리리코, 그리고 사쿠라. 변함 없이 이 넷이다.

그리고 유지 이콜 [배신자]라는 것도 내 안에서는 확정되었다. 판단하기에 충분한 상황증거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정성껏 상처를 닦아내고 소독약을 바른 다음, 거즈를 잘 맞춰 붕대로 감아주는 사쿠라가.

유지에게서 나를 구하기 위해 한 번 죽음을 선택한 사쿠라가.

[주모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이런 이유로 다들 납득해주리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지만, 나는 그렇게 조용히 확신하고 있다.

 

루나와의 대화로 부상한 용의자.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리리코.

변덕스런 행동이 눈에 띄는 마이.

언제나 한 걸음 빼고 있는 츠바사.

더욱이 레이가 준 정보에 의하면 리리코와 츠바사는 몇 번이고 단 둘이 남을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루나가 제안한 가능성에 [주모자]가 [수호자]에게서 정보를 얻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 둘에게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다만...... 레이는 두 사람이 정말 사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좀 그런 분위기에 맞닥뜨린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 츠바사가 평소 같지 않은 순진한 모습을 보였다고.

그렇지만 단순히 밀회를 가졌던 것인지도 모른다.

지금 상황에 생각이 좀 짧은 것이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지금 내가 그런 소릴 할 입장은...... 음, 아닌 것 같다.

더구나 단 둘이 만나는 것이 의심스럽다면 난 두 말 할 것도 없이 가장 의심스러운 입장이니.

유지, 마이, 루나...... 지금까지 누군가와 단 둘이서 이야기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을 테니.

 

한편 마이가 의심스럽지 않느냐면, 그렇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한 번 강렬한 질책(촙을 포함한)으로 도움을 받은 이상, 의심하고 싶지는 않지만

유지가 폭주했을 때 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마이였다.

신랄한 언동으로 모두를 헤집거나 때때로 이상하리만치 요령 좋게 움직이기도 한다.

의도가 없어 보이지도 않는다는 이야기다.

 

결국 여기서 사고는 멈춘다.

아직.

아직 판단의 재료가 부족하다.

그 판단의 재료를 얻기 위해서라도 유지로부터 정보를 얻어내야하지만.

이제 그것도 힘들다.

달리 뭔가 방법을 생각해내야겠는데

 

[사쿠라] : “다 됐어 다이스케”

 

사쿠라가 머리에 손을 얹고, 그렇게 말했다.

세면대의 거울에 깔끔하게 붕대가 말린 내 모습이 비쳤다.

 

[다이스케] : “그래, 고마”

 

말이 끊긴 것은 사쿠라가 내 등에 안겨왔기 때문.

목에 손을 두르고

꾸~욱 내 몸에 기댄다.

 

[사쿠라] : “이 정도여서 다행이야”

 

귓가에 대고 속삭이자, 기분 좋은 감각이 등줄기를 스친다.

 

[다이스케] : “야, 야 사쿠라......”

[사쿠라] : “후후후후......”

[다이스케] : “마이 있는데”

[사쿠라] : “괜찮아 자는걸”

[사쿠라] : “근데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반응이 고작 그거니?”

 

무슨 반응을 원하는 거냐?

 

[사쿠라] : “나 나도 제법 있는 것 같지 않아?”

[다이스케] : “뭐가!?”

[사쿠라] : “정말, 다이스케도 참~ 알면서......”

 

큭큭거리는 사쿠라. 거야 알기는 하지. 등에 바짝 들러붙는 강력한 두 개의 굴곡말이지!!

 

[사쿠라] : “있잖니, 다이스케~ 나 좋아해?”

[다이스케] : “......”

 

난......

난 사쿠라를......

 

[다이스케] : “그래 좋아해”

 

사쿠라는 한층 더 내게 밀착한다.

 

[사쿠라] : “이대로 들어”

 

귓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부드러움이 사라진 억누른 냉철한 목소리.

 

[사쿠라] : “다이스케, 너...... [공유자]지?”

 

어 어떻게?

 

[사쿠라] : “아무 소리 말고 들어...... 나, 아까 다이스케를 [진단]했어. 내가 [진단자]야”

 

잠깐, 잠깐만...... 그러니까 그 말은

 

[사쿠라] : “사과해야겠지. 미안해 난 널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필요했어”

[사쿠라] : “리리코도 말했다시피, 객관적으로 다이스케 네게 전혀 의심스러운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까......”

[사쿠라] : “그렇지만 이걸로 다이스케를 100% 믿을 수 있어. 이건 이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몹시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해......”

 

아까 내가 생각했던 대로다.

나는 나 스스로의 의심받을 구석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단 한 번뿐인 [진단자]의 능력을 잃고 말았다.

아니......

이게 그렇게 우려할 사태인지, 실은 잘 모르겠다.

사쿠라가 말한 대로 결속이 강해지는 것은 좋은 일이고, 내 입장에서는 사쿠라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이렇게 내가 의심스러운 상황에서, 정확히 [공유자]라는 것을 간파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아무런 유도도 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밝혀왔다는 것은 사쿠라가 [진단자]가 맞다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다행이다.

두 소꿉친구는 명백히 무죄였다.

 

[사쿠라] : “화났니?”

[다이스케] : “아니. 오히려 걱정끼쳐서 미안한데”

 

무엇보다도 고백을 해준 사쿠라와 완벽히 마음을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은 삭막해져만 가던 내 마음을 촉촉이 적셔주었다.

 

[사쿠라] : “다행이야”

 

꼼짝도 않던 사쿠라는 다시금 몸을 밀착시켰다.

 

[사쿠라] : “여기 좀 보겠어”

 

말하는 대로

돌아본 바로 그 곳에는 사쿠라의 입술이 있었고.

두 개의 입술이 겹쳐진다.

두 번째, 키스.

마냥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과 근접한 거리에서 느껴지는 사쿠라의 숨결이 내 감각에 달콤함만을 남긴다.

그저 그 마음만을 나타내는 사쿠라의 모습은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다.

버터플라이 게임이 남긴 무수한 상처가 그 짧은 시간만큼은 사라진 것만 같았다.

 

고동과 함께 호흡이 거칠어진다.

나는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을 떼려 하고.

사쿠라는 몸을 맡기고 떨어지지 않으려 한다.

붕대를 감은 머리를 양팔로 두른다.

호흡을 빼앗으려는 듯이, 그 작은 입술이 달려든다.

천천히 사쿠라의 눈이 열린다.

멍하니 넋을 잃은 눈동자.

 

그 눈동자와

호흡에서 연상되는......

나는 도대체 왜 이걸 떠올린 건지......

토모에의 마지막을 떠올리다니.

 

토모에와 나누었던 마지막 대화.

루나와의 약속.

레이의 사과.

그런 상처가 한층 더한 고통을 지니고 되돌아온다.

더 이상, 사쿠라의 달콤한 감촉은 느껴지지 않는다.

다소 팔에 힘을 넣었더니 사쿠라가 눈썹을 깜짝 떨고는 입술을 뗐다.

 

[다이스케] : “미안...... 게임 마스터 자식이 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좀 그래서......”

 

거짓말을 했다.

 

[사쿠라] : “아...... 그 그랬었지! 나도 참 아우, 부 부끄럽잖아 다이스케도 참!”

 

쑥스러운 듯 미소지으며 내 어깨를 팡팡 때리는 사쿠라. 이제 평소의 사쿠라다.

좀 전에는 마치 다른 사람 같았는데.

 

[다이스케] : “이런건 지금은 좀 참자”

 

사쿠라의 표정이 슥, 흐려진다.

 

[다이스케] : “사쿠라랑 그, ...... 하는 게 싫다는 건 아니고”

 

이게 거짓말인지 어떤지는 스스로도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끝을 흐린다.

그렇지만 그 때 느꼈던 죄악감을 다시 한 번 느끼기는 싫었다.

 

[다이스케] : “불안해지면 언제든지 말해. 얼마든지 상담하거나 같이 있어줄 수는 있으니까”

[사쿠라] : “으 응. 고마......워”

 

애절한 표정이 쑥스러운 표정으로 변한다.

곧잘 표정을 바꾸는 사쿠라.

이 소꿉친구에게서 여성적 매력을 느끼고 만 나는 이제 망설임을 감출 수가 없다.

 

머리를 흔들고, 사고를 전환한다.

두 사람이 줄었고, 친구들의 관계에는 균열이 발생했고, 진단 결과는 꽝이다.

지금은 [주모자]에게

아니, 게임마스터에게 있어 유리한 상황이다.

 

그러나 여기서 또 한 사람.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마음이 든든하다.

마이는 아주 잠든 모양이다.

그래도 우리는 일단 메모를 이용해서 마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정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더보기

[레이] : "......"

 

모조리 건성건성이다,

 

[츠바사] : "그나저나...... 도대체 어떻게 유지를 집어 넣었대?"

 

손이 마음대로 움직인다.

 

[레이] : '살짝 문을 열어봤더니, 유지 선배가 악을 쓰며 다이스케 선배의 방문을 열려고 하고 있더라고요.'

[레이] : '그래서 눈치를 못 채든지 들켜도 신경을 안 쓸 것 같아서요'

 

달변하는 내 손. 열연하는 내 표정. 마음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밝은 정신상태를 연출해 준다.

 

[레이] : '그래서 방 안에서 쓸만한 걸 찾아 응급상자에 있던 붕대를 발견해서'

[레이] : '그걸 가지고 방을 나왔어요. 유지 선배한테 들키긴 했는데, 역시 다이스케 선배 방에 계속 붙어 있었어요'

[레이] : '그래서 전 로비를 가로질러 유지 선배의 방문을 열고'

[레이] : '그러니까, 방 입구 오른쪽에 보면 금고가 있잖아요. 금고 다리랑 문의 경첩에 붕대를 묶어버렸죠. 팽팽하게.'

 

조금 거짓말이 섞여있다. 붕대는 이미 준비해 뒀었다.

여차할 때, 방에 들어오려는 [주모자]가 걸려서 넘어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서, 함정삼아 시험해봤다.

 

[레이] : '그리곤 힘껏 문을 두드려서 유지 선배의 시선을 끌어가지고 스케치북을 보여준 거에요'

[리리코] : "그 와중에 그런 생각을 다 했니...... 대단하구나 레이!"

[츠바사] : "내 말이...... 진짜 적으로 삼고 싶지 않은 타입이라니까"

 

웃음소리. 어떻든 알 바 아닌 웃음소리.

이 정도는 별 것 아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방법이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죽이고자 마음먹고 방법을 생각한 적이 있다면, 이 정도는 누구든 할 수 있다.

 

또 다시 자기 혐오에 빠진다.

다이스케 선배랑 사쿠라 선배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누가 봐도 안다.

그리고 그걸 내가 도왔다.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아니고...

사쿠라 선배가 오빠 곁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때, 사쿠라 선배는 넋을 빼고 있었다. 마음이 갈갈이 찢겨진 사람의 얼굴이었다.

틀림없이 그 때, 사쿠라 선배는 망가져 있었다.

예상은 간다. 문을 잠그지 않으면 다이스케 선배가 죽을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그곳이 다이스케 선배의 방이라면 나 또한 그럴 테니까.

 

그렇기에 고해야만 했던 진심.

결과적으로 실패하고 만 행위.

나라도 그렇게 했겠지.

문을 잠궈서 죽어버리는 게 차라리 아름답고 자기만족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여자라는 건, 그런 생물.

그런 마음을 알아버렸으니까.

나는 사쿠라 선배를 도왔다.

그리고 두 사람이 잘 된다면 그때는 내 마음을 정리하고 다이스케 선배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결국 나는 그 이후로 모조리 건성건성이고 그 생각만을 하고 있다.

격렬한 후회와 함께.

명백히 게임에 관한 일은 뒷전이고 그냥 들뜬 분위기를 조장하고 말았다.

이렇게 입 다물고 있으면 눈 앞의 두 사람은 즐겁게 대화를 나누고 있다.

알고나 있는 걸까? 루나가 죽었고 유지 선배는 격리시켜 놓았다. 지금 이 상황은 매우 위험하다.

지금 여기 없는 마이 선배는 아까 헤어질 당시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던 걸로 보아 인지하고 있고, 해이해지지도 않았다.

 

왜나면 [주모자]라서...... 그런 단정은 너무 이른가.

안 되겠어. 이대로라면 우린 게임에서 지고 말거야.

다이스케 선배는 그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알고 있을 테니 알아서 자중해주리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사쿠라 선배는 매력적인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이상 그 매력에서 헤어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냥 그게 싫은 거잖아?

 

응 맞아.

 

게임에서 살아남는 건 이미 관심없지?

그냥 오빠를 포기 못하는 것뿐이잖아?

 

그래 그 말이 맞아.

더 이상 망가지지 않으려고 그런 건데.

결국, 나는 그 균열을 키웠을 뿐이었다.

어쩌지. 더 이상 망가지면 안 되는데.

어쨌든 오늘 오빠랑 채팅에서 나눌 이야기를 생각해둬야겠어

 

...

......

.........

 

몇 가지 사항에 대해 간단하게 확인하고 동의할 수 있었다.

 

1. 사실확인. 나와 사쿠라 이외에 츠바사, 유지, 마이, 리리코, 레이가 남았다.

2. 루나는 거의 틀림없이 [교환자]

3. 유지는 아마도 [배신자]

그 근육뿐인 바보가 맛이 간 연기 같은 걸 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것은 소꿉친구인 나와 사쿠라의 공통된 의견이다.

 

4. 루나는 2일째의 밤에 [수호자]와 연계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수호자]가 [주모자]의 행동을 막았기 때문.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주모자]가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았든 타겟은 선택되었을 테니까.

죽 [주모자]가 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누군가의 방문이 열렸더라면, 그 때 반드시 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렸을 것이다.

그랬다는 보고가 없었던 이상 [수호자]의 능력에 의해 락 자체가 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타당하다.

그 이유가 우연한 것인지 인위적인 것인지는 유감스럽게도 모른다.

인위적인 것이라면 [수호자]는 [주모자]에게 정보를 흘리고 있다는 것이 된다.

[주모자]는 일부러 [수호자]의 대상을 선택했고, 자신의 능력을 하루치 날려먹었다는 이야기다. 의도는 불명.

 

5. 다른 한 명의 [공유자]가 살아 있다.

 

[사쿠라] : “정말? 누구니?”

 

마이를 의식한 위장이라고는 하나, 몰래 이야기 할 때마다 밀착해야 한다는게 참......

좀 그렇다.

 

[다이스케] : “미안하지만 그건 비밀. 루나가 해준 어드바이스가 있어서”

[사쿠라] : “그 그게 뭐야”

 

사쿠라는 조금 불만이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사쿠라] : “그래 그렇구나. 응”

[사쿠라] : “[공유자]는 [주모자]를 특정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유리한 역할이니까. [공유자]가 둘 다 살아있다는 전제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사쿠라] : “일단 네 명이 남는 시점에서 [은둔자]가 클리어를 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남는 것은 셋이지”

[사쿠라] : “이 시점에서 [공유자]가 살아있다면 게임 set"

[사쿠라] : “그렇다면 다섯 명이 남는 단계에서 [공유자]가 두 명 모두 살아있을 경우 [주모자]는 세게 나올 필요가 있겠어”

[사쿠라] : “이것은 적지 않은 압박이 될 터”

 

아하.

‘다섯 명이 남는 시점에서 어떻게든 [공유자]를 처치하지 못하면, 져버리는걸“

루나의 이야기가 그런 뜻이었구나.

 

[사쿠라] : “그리고 정보 누설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정보를 제한하는 것이 정공법이라는 것이네...... 과연 루나다워. 빈틈이 없는걸”

[사쿠라] : “게임 클리어를 위해서라도 죽은 것은 정말 안타까워......”

 

동감이다. 그렇지만 이제와 그런 소릴 해봤자 소용없다.

 

[사쿠라] : “알겠어?! 대신에 다른 [공유자]에게도 내가 [진단자]라는 것을 알려둬야 해”

[다이스케] : “아 그래. 알았어”

[사쿠라] : “반드시 해야 해. ......만에 하나, 다이스케가 무슨 일이 생겼을 경우에 그쪽에서 내게 [공유자]라는 사실을 알려줘야 하니까”

 

그렇군. 그렇게만 하면 다시 다른 [공유자](레이)와의 신뢰관계를 형성시킬 수 있다.

사쿠라는 진짜 이런 쪽으로는 머리가 잘 굴러가는걸.

 

[사쿠라] : “그때는 [다이스케에게서 들었다]고 말하도록 하게해. 이게 암호야”

[다이스케] : “알겠어. ......뭐 일단은 죽지 않도록 조심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사쿠라] : “다다다당연한 소리 할래! 죽었다간...... 죽었다간 절대로 용서 안 해줄 줄 알아!”

 

냉철한 전략가의 얼굴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언제나 그렇지만 표정이 풍부한 사쿠라.

그럼...... 계속 할까.

 

6. 이상의 다섯에 근거하여 츠바사, 리리코, 레이, 마이는 각각 [주모자] [수호자] [은둔자] [공유자]중 하나다.

 

내 개인적인 시선으로 보면 그 가운데 다른 한 [공유자]를 제외한 셋이 [주모자]일 가능성이 있는 용의자.

여기까지 확인했을 때 사쿠라가 다시 몸을 기대어 왔기에, 나는 또 직접 할 말이 있는 것이라고 인식했다.

 

[사쿠라] : “7번도 있어. 제법 대단한 것이”

[다이스케] : “대단해?”

[사쿠라] : “봐......”

 

뭐냐고 묻기도 전에 사쿠라는 가슴팍에 손을 찔러 넣어서

 

[다이스케] : “뭐뭐뭐뭐하는 거야!”

[사쿠라] : “이 이 바보가! 무슨 상상하는 거니!”

 

잔뜩 상기되어서는 토닥토닥. 옆에서 보면 닭살커플의 애정행각으로 보이겠지. ......마이가 자고 있어서 진짜 다행이다.

 

더보기

[마이] : (안 자걸랑 이 바보들! 젝일슨! 진짜 노닥거리고 있잖아 이 녀석들!)

[마이] : (......그나저나 분명히 사쿠링도 상당히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았는데 용케 저렇게도 마음을 놓네......)

[마이] : (......사쿠링이 [진단자]인가. 그래서 사적으로 능력을 써버렸단 거네.)

[마이] : (그렇담 다이스케랑 레이뿅이 [공유자] 리리콩이 [수호자]고, 츠바사가 [주모자]. 깔끔하게 퍼즐이 완성되어버렸네)

[마이] : (이거 글렀구만. 리리콩이 맛이 가서 주사기를 이상한데다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길 방도가 안 보이네. 끈나따아)

[마이] : (......빠져나갈 궁리나 해야지. 약도 써버렸으니 네 명이 남을 때까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데)

[마이] : (......이번에도 파파의 승리. 매번 보는 웃음도 있고 눈물도 있는 흔해빠진 게임이야. 죽어줄 가치도 없어)

 

사쿠라가 끄집어낸 것은 가늘고 길게 말린 은색의 봉투.

바로 알 수 있었다. 방에 비치되어 있던 식량 파우치다.

 

[다이스케] : “간식이라도 발견했나?!”

[사쿠라] : “아무리 그래도 이 상황에 간식 소리는 너무하잖아. 겉이 중요한 게 아니라, 문제는 안에 들어 있는 것”

 

아무래도 파우치 안에 있는 것을 들어내고 겉봉만을 이용했나 보다.

그것을 풀어내고, 내용물을 꺼내는 사쿠라.

 

어라. 그거 설마......

 

[사쿠라] : “어제 내 방에 놓여있었어”

 

무기적인 빛을 발하는 주사기.

바늘에는 반투명한 캡이 씌워져 있어서 벗겨내면 바로 사용할 수 있게 되어있다.

물론 실린더에는 투명한 액체가 듬뿍 담겨있다.

 

[다이스케] : “방에 놓여있었다고?”

[사쿠라] : “그래. 다이스케 네 방에서 셋이 의논하고 있었을 때 리리코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큰 소동이 났었지?”

[사쿠라] : “그 뒤에 방으로 돌아갔더니, 있었어”

[사쿠라] : “메모도 있었고. 바로 이 것”

 

빈 파우치에서 고이 접힌 종이쪽지를 끄집어 내는 사쿠라.

거기에는 정중하면서도 사람의 개성이 느껴지지 않는 글자로 이렇게 적혀있었다.

 

[약입니다. 위험할 때 쓰세요. [은둔자]로부터]

 

[다이스케] : “루나랑 똑같아......”

 

무심결에 생각하고 있던 것이 그대로 튀어나왔다.

 

[사쿠라] : “뭐!?

[다이스케] : “아아, 그게 실은”

 

루나의 습격을 받았던 것. 그리고 그 주사기를 받았더란 사실을 전했다. 메모도 그렇고 상황이 너무 비슷하다는 것도 알려준다.

참고로 그 이후에 주사기는 검은 장갑과 함께 서랍에 넣어뒀다.

 

[사쿠라] : “어째서 그렇게 중요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니!”

[다이스케] : “미 미안. 루나가 [교환자]라는 이야기에 반론이 없어서 그만”

[사쿠라] : “그래서, 메모는 어떻게 했어?”

[다이스케] : “어? 아니, 안 받았는데”

[사쿠라] : “이런 얼간이! 그게 있었더라면 필적을 비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는데!”

 

얼간이라는 소리도 참 오랜만에 듣는다.

 

[다이스케] : “미안...... 혹시 있을지도 모르니까 나중에 루나의 방에 가 보자”

[사쿠라] : “음~ 지금은 그다지 수상스러운 행동은 하고 싶지 않단 말이지......”

 

사쿠라는 심란한 얼굴로 생각에 빠졌다.

 

[사쿠라] : “그렇다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역시나...... 아니 하지만, 으으음......”

[다이스케] : “루나는 이게 독이라고 본다던데”

[사쿠라] : “근거는?”

[다이스케] : “그게 좀 미묘한데, 약이었다면 자기가 썼을 거라나......”

[다이스케] : “그리고 이게 만약 진짜 약을 둘 생각이었다면......”

[다이스케] : “이렇게 잘못하면 약을 날릴지도 모르는 그런 방법으로 건넬 리가 없다고도 했고”

[다이스케] : “당시에 루나는 좀 예민해져 있었으니까 지나치게 악의적으로 봤을 수도 있지만”

[사쿠라] : “아니, 충분히 일리는 있어”

[사쿠라] : “먼저 이걸 보낸 것이 [은둔자]일까 [주모자]일까. 그 점에 대해서는 거의 [은둔자]라고 보면 되겠지”

[사쿠라] : “루나의 말대로 이런 식으로 보내어 봤자 의심스러워서 아무도 쓰려고 하지 않을걸”

[사쿠라] : “그러기는커녕 괜스레 다른 사람에게 건넸다가 만약의 경우에 무기로 사용될 위험을 만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을 거라고 봐”

[사쿠라] : “아마도 이 게임의 중반부에는 실력행사가 중요한 요소로 작용할 거야......”

[사쿠라] : “세 명이 남은 시점에서 [주모자]가 정체를 드러내서 한 명을 직접 죽여버리면, 승리가 확정되고 남은 하나는 자동적으로 죽을 테니까”

[사쿠라] : “그 때 상대가 무기를 지니고 있다면, 오히려 반격 당할 가능성만 늘이는 셈이잖아”

[사쿠라] : “참고로 두 자루의 주사기를 놓고 간 것은 모두 동일인의 소행이야”

[사쿠라] : “[주모자]와 [은둔자] 두 사람이 우연히 같은 내용의 메모를 적어 같은 방식으로 움직였으리라고도 생각하기 힘들어”

[사쿠라] : “이상의 내용을 정리해보면...... 주사기를 놓고 간 것은 [은둔자]”

[사쿠라] : “더군다나 이 게임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네.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움직였어”

[사쿠라] : “뿐만 아니라 매일 밤 타겟을 선택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런 방법밖에 생각해내지 못할 만한 녀석”

[다이스케] : “말하는 게 어째 짐작가는 사람이 있다는 투다?”

[사쿠라] : “그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리리코가 [은둔자]라고 생각해”

 

갑작스러운 특정인의 지명에 가슴이 철렁한다.

 

[다이스케] : “리리코......?”

[사쿠라] : “그래. 이 안에서는 가장 게임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걸”

[사쿠라] : “그 다음으로 유지인데, 걔는 이미 [배신자]로 거의 확정되었으니”

[다이스케] : “그럼 주사기를 두고 간 이유는?”

[사쿠라] : “잘은 모르겠지만 루나가 역할을 밝혔던 것이 의심스럽게 보였던 게 아닐까”

[사쿠라] : “그렇게 본다면 소거법으로 내게 온 것이 약이겠는데...... 모종의 이유로 내가 죽을 것 같아서 도움을 주려는 걸까”

[다이스케] : “단번에 납득하긴 힘든 이유인데”

[사쿠라] : “나도 그리 생각해...... 하지만 리리코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하나 더 있어”

[사쿠라] : “그 때, 나는 아침에 방을 나와서 식사를 하고, 그 뒤에 다들 뒷정리하러 아래로 내려간 다음......”

[사쿠라] : “유지와 나, 그리고 너와 함께 셋이서 의논하러 네 방으로 갔었지?”

[다이스케] : “어, 그렇지”

[사쿠라] : “즉 내가 다이스케의 방에 들어간 다음, 리리코가 비명을 질렀던 시간 사이에 주사기를 두고 갔다는 이야기가 돼”

[사쿠라] : “너 이거 알고 있니?”

[사쿠라] : “다이스케 네 방의 문을 열면 정면에 유지의 방이 보이고 바로 그 오른쪽으로 내 방의 문이 아슬아슬하게 보인다는 걸”

[다이스케] : “응?, 아니 몰랐는데. 그게 왜?”

 

2시가 유지의 방. 3시가 사쿠라의 방. 위치관계는 확실히 그 말대로다.

 

[사쿠라] : “그 상담을 하고 있었을 때 나 때문에 문을 열고 있었잖니. 그러면 그 때 누군가가 내 방으로 들어가려 했다면 보였겠지?”

[사쿠라] : “물론 내가 보지 못했을 수도 있기는 해. 그렇지만 충분히 들킬 가능성이 다분한 그런 때에 남의 방에 들어가려고 할까?”

[사쿠라] : “그 뒤에 마이가 혼자 왔었잖아”

[다이스케] : “그래, 그랬지”

[다이스케] : “아아, 그러니까 마이는 네 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얘기?”

[사쿠라] : “그래. 그 뒤에 문에 물건을 끼워서 거의 닫아 놓았었잖아”

[사쿠라] : “나중에 내 방에서 시험해 봤는데, 그 각도에서는 바깥이 거의 보이지 않았어”

[사쿠라] : “그런데 레이와 츠바사는 아래에 계속 있었어. 루나는 방 안에서 나오지를 않았고”

[사쿠라] : “그렇다면 아무도 모르게 약을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직후에 계단에서 굴렀다는 리리코 정도?”

[사쿠라] : “루나가 결백하다고 하는 이상, 리리코는 직접 굴렀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우니까, 걔는 어쨌든간에 수상해”

 

......

난처하게도 설득력있는 이야기였다.

포커를 한다면 풀하우스가 될 것을 떨거지 원페어로 만들고도 남을 만한 녀석이 바로 리리코다.

참고로 결국에는 말도 안 되는 운빨을 가지고 내 인생 최초로 실전에서 로열스트레이트플러쉬를 볼 수 있게 해주셨지만......

기본적으로 리리코는 게임에 관해서는 완전 꽝이다. 그렇기에 일이 이렇게 되어버렸는지도 모르겠지만.

 

리리코는 평소 그런 행동력을 발휘할 만한 타입이 아니지만......

게임이 이 모양이니. 평소 볼 수 없었던 일면이 나타난 것인지도 모른다.

 

[다이스케] : “일단 그 문제는 생각해보기로 하자. 아무리 그래도 좀 비약된 감이 있긴 하니까”

[다이스케] : “그래서 결국 내가 가지고 있는 주사기는 독이고 이게 약이라고 생각하면 되나? 그 반대라고 보기는 어려우니까”

[사쿠라] : “모르겠어...... 그 시점에서는 루나가 중요한 플레이어였으니까 루나를 지키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사쿠라] : “루나에게 남긴 메모는 [약입니다] 그게 다였지? 내게 남긴 메모가 다소 문장이 긴걸”

[사쿠라] : “첫 번째와는 달리 진심을 담아서 쓴 것 같기도 하단 말이야......”

 

단정할 수는 없겠군.

둘 중 하나가 약이고 하나는 독이라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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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어째 이 두 분 초 러브러브하신데. 아까부터 떨어질 생각을 않는구만!)

[마이] : (......뭐 둘이서 이래 저래 의논이나 하고 있는 거겠지. 어차피 난 다 파악했으니 흥미 없지만)

 

그 때였다.

갑자기 문이 철컥 열린 것이다.

 

[레이] : ‘몸은 좀 어때요?’

 

그 글자를 적었을 땐 미소짓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레이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나와 사쿠라가 침대 위에서 나란히 앉아 찰싹 붙어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리라.

안면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다이스케] : “아니! 그, 이건 그런 게 아니라!”

[사쿠라] : “그 그냥 잠깐 의논하고 있었던 것 뿐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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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여보셔요...... 나 때문에 위장했던 거 아녔수. 그렇게 제 입으로 떠벌려도 됨?)

 

[마이] : “으음......”

 

우리 때문에 소란스러웠는지 마이가 깨어났다.

 

[레이] : ‘교대시간 다 됐어요. 별 문제 없으면 그만 교대해주실래요?’

 

순식간에 적어 보이고는 발걸음을 돌리는 레이.

분명히 화났다.

그럴 만도 하지. 우린 게임 같은 건 잊어버리고 사랑놀음이나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하지만 아니다. 우리는 중요한 정보를 교환하고 게임 공략의 힌트가 될 만한 열쇠를 찾았다.

두 자루의 주사기가 있다는 것.

리리코 이콜 [은둔자]라는 가설.

조금만 더 시간을 들이면 퍼즐의 조각을 모두 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밤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교환자]가 빠진 지금, 오늘 밤에는 반드시 누군가 죽을 테니까.

 

 

다시 로비에 여섯이 모인다.

하품을 하고 있는 마이. 피로한 기색이 역력한 사쿠라.

츠바사의 상처는 대충 처치가 끝난 모양이다.

찢어져 피에 물든 셔츠는 보기 안쓰러웠지만 그 아래로 깔끔하게 붕대가 감겨 있는 것이 보인다.

리리코는 언제나 미소짓고 있다. 정말 언제나.

지금은 그 미소에서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다.

여전히 굳어있는 레이. ......진짜 조속히 오해를 풀고 싶다.

 

[리리코] : “다이스케 군, 사쿠라!”

[츠바사] : “다이스케! 몸은 좀 괜찮아?”

[다이스케] : “끄떡없어. 손 좀 보고 쉬었더니 다 나았다”

 

정말 머리가 어지럽던 것은 멈췄다. 조금 아프긴 하지만 이 정도는 문제없다.

 

[다이스케] : “츠바사 넌?”

[츠바사] : “에이 뭘 이정도 가지고. 여왕님의 채찍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

 

새로운 자아라도 발견했나? 참 부지런한 놈일세.

 

[다이스케] : “유지는?”

[츠바사] : “꿈쩍도 않는데. 지쳐서 잠이라도 자는 거 아니려나”

[사쿠라] : “설마, 안에서 그대로 죽은 건 아니겠지?”

[츠바사] : “확인이나 해볼까?”

 

츠바사 그룹 세 명이 츠바사의 방으로 가 노트북의 고발용 윈도우에서 유지의 생사를 확인하고 돌아온다.

 

[츠바사] : “별 문제는 없네”

[리리코] : “예. 확실해요”

[레이] : ‘생존이라고 되어 있었어요’

 

일단 유지는 안심해도 되려나.

 

[리리코] : “아, 점심을 완전히 깜빡했네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요”

 

그러고보니. 벌써 오후 세 시다. 너무 소란스러웠던 나머지 잊고 있었다.

 

[리리코] : “뭘 만들어 올까요?”

[츠바사] : “아니, 시간도 이렇고 하니 별로 안 움직이는게 좋을 것 같은데...... 다이스케, 어떻게 생각해?”

 

생각해 볼 것도 없다. 지금은 서로 눈이 닿는 범위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다이스케] : “나도 동의. 배가 고프면 각자 보존식으로 떼우는 걸로 하자”

[마이] : “으...... 알았어. 맛없어 보이던데......”

[리리코] : “어쩔 수 없어요. 클리어하고 나면 맛있는 거 많이 만들어 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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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이 꼴로는 무리라니까)

 

[마이] : “웅 리리콩 땡큐”

 

클리어하면 말이지. 그래 클리어 해야지.

 

[다이스케] : “그럼 교대하자. 레이랑 츠바사, 리리코는 각자 방에서 식사를 하고 쉬어. 우린 여기로 가져와서 먹자”

[츠바사] : “옛서”

[사쿠라] : “알겠어”

[레이] : ‘잠깐만요’

 

그 때 레이가 이견을 보였다.

 

[레이] : ‘제가 다이스케 선배 대신에 남았으면 해요’

[레이] : ‘다이스케 선배는 좀 더 쉬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레이] : ‘츠바사 선배도 다쳤고 리리코 선배도 계단에서 굴렀었잖아요’

[레이] : ‘세 분이 쉬시고 괜찮은 사람들끼리 로비에 있기로 해요’

 

음. 맞는 말이기는 한데.

 

[다이스케] : “난 괜찮은데”

[레이] : ‘아뇨. 머리에 난 상처는 가볍게 봐선 안 돼요. 가급적 안정을 취할 겸, 좀 주무세요’

[다이스케] : “음......그럼 레이한텐 미안하지만 부탁 좀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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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사] : (하하하...... 니들도 결국 분열이냐? 이거 재밌네)

[츠바사] : (유지가 하나도 죽이지 못했던 건 오산이었지만 효과는 확실히 있었어)

[츠바사] : (사쿠라랑 엮이게 만들었으니까. 레이와 다이스케의 라인도 이걸로 끝났군)

[츠바사] : (그러면, 유지. 안 죽어도 되겠냐? 이대로 가면 사쿠라가 타겟이 된다고)

 

모두들 찬성하고 있다......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그럼 성의를 고맙게 받아볼까.

 

[다이스케] : “그럼 난 좀 더 쉴게. 사쿠라 마이 부탁할게”

[사쿠라] :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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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레이...... 하고 싶은 말이 있나보구나)

 

[마이] : “오 오 옛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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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설마하니 설마하니 아수라장? 아수라장!? 나 좀 살려줍메! 쪼끔 재밌을 것 같기도 하지만!)

 

그리하여 나와 츠바사, 리리코는 방으로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레이 시점]

 

[레이] : ‘너무 하시는 거 아녜요? 사쿠라 선배’

 

나는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사쿠라 선배와 마주한 위치.

마이 선배는 멀찍이서 멍하니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런 척을 하고 있는 것이겠지. 이런 화제에 휘말리고 싶지 않을 테니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아까 그건 심했다. 사쿠라 선배도 그렇고 다이스케 선배도 그렇고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다.

버터플라이 게임이라는 목숨이 걸린 이상한 무대에 서서 이런 연애감정은 덮어둬야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쿠라 선배의 등을 밀어준 것은 그 때 그대로 뒀다가는 사쿠라 선배가 xx져 버릴 것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사쿠라 선배도 다이스케 선배도 상황에 대한 분별력이 없다.

마이 선배도 그렇게 자 버리면 굳이 그룹을 나눈 의미가 없는데......!

뭐 마이 선배는 이따가 살짝 주의를 주면 된다......

그렇지만 사실상 둘만 남은 상황에서 그런 짓을 하고 있는 이 사람들은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어떤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스스로 발을 밀어넣다니......!

역시 이 게임에 있어서 연애감정은 절대 금물이다. 둘만 남는 상황을 원하는 플레이어는 파멸로 다가서게 되니까.

 

[사쿠라] : “어머, 무슨 소리니?”

 

하지만.

사쿠라 선배는 호흡을 한 번 내어 쉬고는 무슨 일이냐는 듯 시치미를 뗀다.

두말나오지 않도록 확실하게 적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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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아~아...... 시작했네)

 

[레이] : ‘자중 좀 해달라는 얘기에요. 다이스케 선배와 필요 이상으로 사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사쿠라] : “넌 상관 없지 않아?”

 

이번엔 상관이 없단다...... 이번 만큼은 부아가 치밀었다.

언제나 합리적이고 공정한 사쿠라 선배의 태도가 아니다. 어떻게 봐도 다이스케 선배와 잘 된 것이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레이] : ‘아뇨 상관있어요. 지금 이 상황을 모르고 하는 소린 아니죠?’

[사쿠라] : “잘 알아. 충분히 생각하고 이러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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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레이...... 우리를 응원해 주는 것 아니었니? 아니...... 그런 걸 기대할 만한 사이는 아니지만......)

[사쿠라] : (......아무리 그래도 조금 지나쳤나...... 그렇지만 이기기 위해서 의논했던 것이니, 어쩔 수 없잖아!)

 

미안하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아요. 사쿠라 선배.

어떻게 생각해 봐도 지금 그러고 있을 만한 여유를 못찾겠네요.

 

[레이] : ‘실제로 지금 이 붕뜬 분위기가 상황에 어울리는 건 아니죠. 그것 때문에 경계도 느슨해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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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

 

[레이] : ‘유지 선배 일을 포함해서 오늘 중요한 문제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못했는데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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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아 안다고......)

 

[레이] : ‘이래가지고 버터플라이 게임을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꽤나 거친 문장이 되었다는 건 안다.

냉정해질 수가 없다. 화가 나는 걸 참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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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어째서? 내가 어째서 이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거람?)

[사쿠라] : (그야 옆에서 보면 두말할 것 없이 내가 나빠! 그렇다고 해서 그걸 핑계로 그렇게 심한 소리를 할 필요는 없잖아!)

[사쿠라] : (......이미 한 번 허락했으면 됐지 그렇게 나오다니 너무하는 것 아니니 레이!)

 

[사쿠라] : “레이 네가 지금 화내는 건 버터플라이 게임 탓이 아니지?”

 

슥~ 사쿠라의 목소리가 차가워진다.

시선을 피하던 사쿠라의 눈이 이번엔 이쪽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다.

움찔, 순간 등줄기로 소름이 끼쳤다.

지금껏 본 적이 없는 무서운 눈.

 

[사쿠라] : “다이스케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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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오오~ 옷!! 선빵은 사쿠링이닷! 뭐 이게 정석이지! 과연 레이뿅은 어떻게 나오실런지!?)

 

뭔가가 소리를 내면서 부러졌다.

사쿠라 선배는 그 금구를 꺼내고 말았다.

지금까지 암묵적으로 지켜온 영역에 발을 딛게 하는 말을.

 

[레이] : ‘무슨’

 

아아. 아아.

xx지는 건 어쩜 이리도 빠를까.

 

[사쿠라] : “다 알아. 모를 리가 없잖니!”

[사쿠라] : “너 너도 다이스케를 좋아하잖아!”

[사쿠라] : “그렇지만 그래도 내게 양보해준 것 아니었니!?”

[사쿠라] : “다이스케가 날 받아줬다고 괜한 심술부리지 말아줄래!”

 

일렁일렁 시야가 흐려진다.

아니, 감정에 북받쳐 눈물이 글썽글썽 맺힌 거구나.

 

[레이] : ‘아니거든요!’

 

그래도 내 사랑스러운 가면은 아직 버텨 준다.

 

[레이] : ‘전 사쿠라 선배가 침착하게 생각했으면 할 뿐이라구요!’

[레이] :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는 건 응원해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란 걸 알잖아요!‘

 

가면을 유지한 채, 대의명분의 모범해답을 흘려낸다.

 

[레이] : ‘그리고, 지금 아무리 그래봤자 그건 진짜 사랑 같은 거 아녜요!’

[레이] : ‘위험한 상황에서 생기는 그냥 흔들다리 효과에 취한 것뿐이라구요!’

[레이] : ‘사쿠라 선배가 그 정도도 모를 리 없잖아요’

 

하지만

 

[사쿠라] : “무슨 소리를 하든 전혀 설득력이 없잖니! 일단 인정이나 하지? 다이스케를 좋아한다고!!”

 

사쿠라 선배는 벗겨내려 한다. 내 가면을.

 

[레이] : ‘아니라니까요’

[사쿠라] : “아니긴 뭐가! 다이스케 이외의 모든 사람한테 한 번 물어보지 그러니, 완전 다 들켰거든!”

 

만약 그렇다해도 다들 그냥 농담이라며 수습해주는데

 

[사쿠라] : “한 마디 더 하겠는데 레이, 너 흔들다리 효과라는 소리는 못 봐 줘!!”

[사쿠라] : “난 옛날부터 엄청 옛날부터 다이스케를 좋아했어!”

 

안 되겠어.

이젠 안 되겠어.

글로 아무리 평정을 가장해도.

얼굴이 더 이상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지 못해......!

 

[레이] : ‘나도 옛날부터 좋아했어요!’

[레이] : ‘당신보다 훨씬 전부터 다이스케 선배를 좋아했단 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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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떴다!! 레이 선수의 울트라 C급 필살기, 고백반사다아아!)

[마이] : (아무리 진심이라고는 해도 역시 저건 좀 조심성이 없네! 적당히 봐서 말려야겠다!)

 

아아.

아아 적어버렸다.

입으로 내뱉는 것보다 훨씬 더 똑똑하게

내 마음은 겉으로 드러나, 새겨지고 말았다.

내 안에서 끝까지 망가뜨리지 않으려 마음먹었던 것이 망가졌다.

 

[사쿠라] : “레이 네가 다이스케를 만난 건 올해 5월이잖니! 되는 대로 말할래!”

[레이] : ‘되는 대로 말한 거 아녜요! 실은, 실은 전에부터 좋아했었다구요!’

 

이제 안 돼. 이제 안 돼. 이제 안 돼.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차례차례 흘린다.

한 번 xx진 댐은 그 어떤 효과도 가지지 못한다. 내 만년필은 그저 정화되지 못한 침전물처럼 쌓여 검은 정념을 토해내기만 한다.

자신이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레이] : ‘좋아했다고! 좋아했다고! 좋아했다고! 좋아했는데......!’

[사쿠라] : “정말 무슨 소리를 하는 거람......!! 그래, 설령 그게 사실이라고 치자. 그럼 진작 고백이건 뭐건 해버렸으면 됐잖아!”

[사쿠라] : “혼자 끙끙 앓기만 하다가 결국 남한테 양보나 하고! 그런 주제에 질투나 하면! 도대체 뭘 어쩌자는 거니!!”

[레이] : ‘당신은 모르겠죠!’

 

그래. 정말 모르겠지.

당연히. 당연히. 당연히. 당연히.

정말 우스갯소리 같은 이야기니까.

 

[사쿠라] : “아 그래 몰라! 모르겠어! 아까부터 무슨 이야길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구!”

[레이] : ‘그러니까’

 

글자가 의미 없는 선으로 변해간다.

마음 속에서 망설이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찢어지고 발겨지고, 망가질 대로 망가진 심정을 내 의지가 제대로 그려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내가 원하는 게 뭐지?

사쿠라 선배를 입다물게 하고 싶어?

용서를 빌고 싶어?

다이스케 선배를 되찾고 싶어?

죄다 폭로해버려서 완전히 xx지고 싶어?

 

똑. 똑. 똑.

넘쳐난 눈물이 번져나는 스케치북에는 지렁이 같은 선이 엉망으로 얽혀

 

[사쿠라] : “정말 더는 못참겠어! 아까부터 질질 뭐하는 거니!! 이딴 것 쓰지 말고 제 입으로 말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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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아 아냐! 무슨 소리야! 절대로 그런 소린 하면 안 되는데!!)

 

사쿠라 선배가 스케치북을 날려버렸다.

 

[레이] : “......”

 

나에게서 의사를 전할 수 있는 방법은 사라졌다.

 

[사쿠라] : “옛날부터 계속계속계속 짜증났거든! 글은 쓸 수 있으면서 말은 못 한다니 그게 뭐니!? 바보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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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제발, 제발 그만!!)

 

[레이] : “......”

 

아아.

이렇게까지 되니 이제 상처받지 않는다.

이건 사쿠라 선배의 본심이 아니다.

사쿠라 선배도 나와 마찬가지다.

마음 속에 생각하는 것과 입이 달리 움직이고 있다.

 

나는 가면을 두르는 게.

사쿠라 선배는 남을 공격하는 게.

그저 감추는 방법이 다를 뿐...

 

[사쿠라] : “레이 넌 비겁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서 자기 입으로 절대 하려고 안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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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아냐, 제바아아알!!)

 

그 증거로 사쿠라 선배의 얼굴이 창백하다. 머리가 좋고 어휘도 풍부하니, 입이 멈춰 주질 않겠지.

 

[사쿠라] : “너는! 현실에서! 다이스케에게서! 그냥 도망이나 치는 겁쟁이야아”

 

사쿠라 선배의 양쪽 눈에 가득한 눈물.

자신의 칼날로 그저, 자신을 상처입혀서 그 고통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사쿠라] : “말도 안 해...... 전하지도 않아...... 그냥 도망만 치다가...... 당당하게 자신과 싸운 나를 질투하고 있는 거......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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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완전 저질이네. 나란 애)

 

안 돼.

우린 이제 안 돼.

너무나도 지쳐서. 더 이상 기댈 것 하나 없을 정도로 xx져서.

둘은 거의 동시에 비참하게 무릎을 꿇고 바닥으로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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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으~음. 뜨겁구려. 어쩜 저렇게 파파가 좋아하는 싸움을 해주는지. 아주 서로의 심장을 후벼파네)

[마이] : (그럼...... 조용해졌겠다 슬슬 달래볼까)

 

[츠바사] : "야~ 마이"

[마이] : "우햐아아!? 츠바사, 뭐하러 튀어 나온 거야!!"

[츠바사] : "아~ 아. 이 아수라장을 정리하려면 지금쯤 나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마이] : "우와! 츠바사 대단해! 타이밍이 갑입니다!"

[츠바사] : "핫핫핫 그치? 아니,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지. 어떻게 됐는데?"

[마이] : "사쿠링의 폭탄발언에 두 사람은 너덜너덜 양자 더블 KO"

[마이] : "이런 상황에 참 기운도 좋다고 안심해야 할지, 개판이라고 한탄해야 할지"

[츠바사] : "정말 치정싸움 만큼이나 경제에 도움이 안 되는 생물활동은 없다니까"

[츠바사] : "왜냐고? 칼로 물을 베어봤자 그냥 헛수고니까 HAHAHA"

[마이] : "아메리칸 죠크는 잘 모르겠지만 그건 부부싸움이고"

[츠바사] : "장난이라도 안 치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다. 오히려 마이 네가 활기가 넘치는 게 더 신기한걸"

[마이] : "음~ 이럴 때야말로 힘을 내야지! 라고 하면 너무 진부할까낭?"

[츠바사] : "나는 흉내도 못내겠는걸. 솔직히 말해서 신경이 한계. 누가 범인인지도 모를 환경에 더는 있고 싶지 않아"

[마이] : "그럼 누구 하나 [고발]해 보지 그래? 마이를 찍어봐야 헛수고겠지만"

[츠바사] : "음...... 그 말을 믿기에는 아무래도 본인이 너무 냉정한데"

[마이] : "어머나 세상에. 마이도 츠바사가 죽는 소리 하는 것보다 훨씬 냉정하다고 생각하고 있던 참인데"

[츠바사] : "진짜 [고발]해 버린다 짜샤"

[마이] : "올마든지! 뭐 100퍼센트 죽을걸. 뭐 애초에 네가 그거라면 그건 못하겠지만"

 

[마이] : (이거 참...... 너나 나나 너무 티난다 ~ )

 

[츠바사] : (......다 알고 있다는 이 태도. 역시 이 녀석이 심판인가?)

[츠바사] : (게다가 이 소극성은 역시 [은둔자]인가......)

[츠바사] : (쳇. 뭐 제법 도움도 됐고 하니 건들지는 않겠어. 덕분에 제법 게임에 탄력이 있었으니)

 

[츠바사] : "휴우. 이러다 우리까지 싸우겠다"

[마이] : "그만하자...... 배가 고파도 맛있는 밥은 없으니까"

[츠바사] : "그래서 쟤들은 어쩌지?"

[마이] : "넌 아무 생각도 없이 나왔냐!"

 

[츠바사] : (아 귀찮아...... 멋대로 죽이든가 살리든가 하라고...... 나만 안 끌어들이면 되니까)

 

[마이] : "뭐 츠바사한테는 별 기대는 안 했으니까 상관없지만"

[츠바사] : "아~ 솔직히 이런 건 좀 껄끄러워"

[마이] : "경박 바보가 할 말이 아니지~"

[츠바사] : "나는 가볍고 밝은 적절한 러브코미디가 좋단 말이지"

[츠바사] : "그럼 나는 그만 방구석으로 돌아갑니다"

 

[츠바사] : (......피 한 방울 안 보는 저런 물렁한 싸움질은 관심없어)

[츠바사] : (참나. 도대체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소릴 하는 녀석들은 당최 이해가 가질 않아)

 

[마이] : (음...... 그럼 할 일이나 해볼까. 나도 참 뭘 이렇게 간섭하고 다니는지)

 

[레이] : “......”

 

얼마나 이렇게 있었던 걸까......

 

[마이] : “자자. 둘 다 이제 속이 시원해?”

 

마이 선배의 목소리.

신기하게도 그 목소리는 후련하게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왔다.

많은 것을 토해낸 탓에 머릿속이 비워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마이] : “나쁜 비율은 사쿠링이 5에 레이뿅이 1”

[마이] : “사쿠링은 하면 안 될 소릴 너무 많이해서 마이너스 5점”

[마이] : “레이도 일부러 말 심하게 하고 거드름 피워서 화낼 원인을 제공했으니까 1점 마이너스”

[마이] : “그럼 일단은 딴 생각할 것 없이 서로 사과합시다!”

 

............

 

[레이] : ‘죄송했어요’

 

스케치북을 주워서 힘없는 글자로 그렇게만 적었다.

 

[사쿠라] : “응......미안......미안해...... 정말......미안해......”

 

둘 다 바닥에 주저 앉아 손을 맞잡고서.

마치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이. 서로 사과했다.

 

[마이] : “좋아 좋아. ......둘 다 참 잘했습니다”

 

우리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린다.

 

[마이] : “나머진 밖에 나가서 하라구”

[마이] : “게임이 끝나고 정정 당당하게 말이야”

 

아아.

그렇게 간단하게 미루는 방법도 있었구나.

 

[마이] : “그럼 마이는 바보 하나 끝장내고 올 테니까, 좀 더 화해하고 있으라구”

 

마이 선배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곧 이어지는 순간, 아무것도 알 수 없게 되었다.

 

[사쿠라] : “레이”

 

사쿠라 선배가 나를 꼭 안았으니까.

 

[사쿠라] : “미안해...... 미안해...... 레이는 아무 잘못 없어......”

[사쿠라] : “나 그냥...... 고백 안 했던 걸로 하겠어...... 다이스케에게 말 안 한 것도 있으니까......”

[사쿠라] : “그러니...... 그러니까...... 이런 소리 할 자격은 없지만...... 나를 용서해주겠니...... 아무일 없었던 걸로......”

 

정말, 아무런 해결도 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서로의 폭탄을 안고 있다. 언제 깨질지 모를 정도로 금이 간 마음을 유리테이프로 붙여놓고 문제는 미뤘을 뿐.

 

그렇지만

나 또한 사쿠라 선배를 끌어안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끄덕였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미안해요.

 

항상 하는 그 말을 xx진 인형처럼 마음 속에서 반복하며.

 

[다이스케 시점]

 

[다이스케] : “이거 생각보다 맛있는데”

 

침대에 엎드려서 건빵을 갉아먹으며 천정을 바라보고 있다.

버터플라이 게임이 머리 속에서 소용돌이친다.

마찬가지로 사쿠라의 생각도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사쿠라랑 사귄단 말이지.

현실감이 전혀 없다. 꼭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다.

하지만. 나도 건전한 남자 고등학생이다 보니. 여자에 대한 관심은 평범하게 있고 더욱이 사쿠라는 누가 봐도 예쁘다.

단순히 친구라는 관념에서 벗어난 지금, 사쿠라는 엄청 예쁜 여자친구니까.

충분히 기분이 들뜰만도 하지.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을 하면서 뒤척거린다.

딱히 유익한 생각은 떠오르지 않는다.

 

쿵!

어?

갑작스런 소리에 몸을 일으켜 보니 마이가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열린 문 앞에 서 있었고.

 

[마이] : “다이스케에 ~ ”

[마이] : “싸랑해에!!!!”

 

얘는 얘가 진짜 난데없다.

훌륭한 점프력으로 뛰어올라 침대 위에 있던 내게 다이빙을 하지 않는가!

피할 틈도 없이 안면에 물컹하는 감촉이!

 

[마이] : “관제탑! 관제탑! 미나세 마이기 동체 착륙에 성공했습니닷! 냐하하하하하!!”

 

영문 모를 소리를 떠들면서 내 머리를 힘껏 끌어 안은 채 부비부비 자신의 가슴에 들이대는 마이!

끄어어어어! 이이이 이 감촉은 OUUUUUUUT!!

 

[다이스케] : “수 숨 좀......!!”

[마이] : “어익후, 너무했나”

[마이] : “굿모 다알링. 몸은 좀 어때?”

 

굿모닝의 약어 같은 건 들어본 적도 없다.

그리고 누가 달링이냐. 몸은 방금 안 좋아졌거든. 도대체 뭐부터 따져야하지.

어쨌든 풀려날 수는 있었다.

 

[다이스케] : “갑자기 뭐야!”

[마이] : “에이~ 사쿠링이 다이스케한테 고백해서 사귀기로 했잖아?”

 

역시나 들켰구만.

 

[마이] : “그러니까 쭉 다이스케를 연모해 왔던 마이도 이 기회에 고백해버려서 셋이 러브러브해져 볼까 해서♪”

 

헐~ 뭐!?

 

[다이스케] : “여 연모했다고?”

[마이] : “몰랐지? 다이스케 그런 덴 둔하니까 ~ !”

[마이] : “그치만......”

 

갑자기 마이의 목소리가 줄어들더니

 

[마이] : “진심이란 말야 이것 봐......”

 

그 손이 살짝 자신의 아랫배로 향해서는

캐미솔의 끝자락을 붙잡아서

 

[다이스케] : “스톱스톱스톱스톱스톱!”

[마이] : “뭘......?”

[다이스케] : “뭐긴 뭐야 전부 다! 그 뭐냐 연모해왔다는 건, 나......?”

[마이] : “꺄아...... 부끄러워라......”

 

수줍어하며 몸을 베베꼰다.

비 비겁하다. 반칙이잖아. 축구라면 레드 카드다. 코피가 날 것 같다는 뜻에서.

아니 나도 진짜 지금 무슨 생각하고 있는겨!?

 

[다이스케] :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마이] : “다이스케는 마이 마이가 싫어......?”

 

말 좀 들으라니까!? 아니, 딱히 안 좋아한단 이야기가 아니라!

 

[마이] : “사쿠라랑 벌써 뽀뽀 했어?”

[다이스케] : “아니, 아 그, 저~ 에”

 

뭐햐냐 부정해야지! 거짓말이지만 일단 부정하자!

 

[마이] : “첫키스였어?”

 

꾸워어어어!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마이] : “그럼 이쪽 첫경험은 마이한테 해줘......!!”

 

진짜 말했다.

마이는 붙잡고 있던 캐미솔을 그대로 들춰 올린다!

아 안 돼. 그런 짓을 하면 세상의 신비가...... 표정, 표정 관리가

그, 그마아아안(책 읽듯이)

 

[사쿠라 시점]

 

[사쿠라] : “레이야”

 

부둥켜 안고, 그렇게 울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름을 부르고.

거의 동시에 나와 레이는 팔에 힘을 뺐다.

서로 마주보고 주저앉아 있다.

 

[레이] : “?”

[사쿠라] : “아까는 그렇게 물어서 정말 미안해. 그렇지만 말하지 못하게 된 이유를 꼭 듣고 싶어. 물어도 괜찮겠니?”

[레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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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그건 안 돼요. 불쌍한 척 하고 싶은 생각도 없고, 말하지 않기에 아직 망가지지 않을 수 있었으니까요)

 

레이는 바닥에 떨어져 있던 스케치북을 주워들어서

 

[레이] : ‘미안해요’

 

그렇게 적었다.

 

[사쿠라] : “그래 이상한 것을 물어 나야말로 미안해”

[사쿠라] : “다이스케를 처음 만난 것은? 그것도 말해줄 수 없니. 라이벌로서 꼭 들어 두고 싶은데”

 

조금 전의 싸움을 제대로 정리하고 싶었다. 안고 있는 의문도 부조리한 이야기들도 모조리.

 

[레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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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그것도 안 되겠어요 ......하지만)

 

[레이] : ‘좋아요. 하지만 사쿠라 선배가 먼저 들려주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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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다 말하지 않는다면 괜찮을지도 몰라)

 

그렇네. 그래야 공평할 것 같기도 해.

 

[사쿠라] : “아하하 알았어. 그렇지만 못 믿을지도 모른다!”

[레이] : “?”

 

보통 믿기 힘들 정도로 너무나도 극적인 이야기.

 

[사쿠라] : “자랑하는 것 같아서 조금 그렇지만, 우리집 제법 돈이 많거든”

[사쿠라] : “조상님이 귀족이셨는데 메이지 자본주의의 파동에도 휩쓸리지 않으시고 전후까지 이어진 공업그룹의 총수가 되셨거든”

[사쿠라] : “작은 재벌같은 거라고 봐야하나?!”

[레이] : ‘부잣집이라는 건 알고 있었는데요. 그게 무슨 문제가 있나요?’

[사쿠라] : “나, 여섯 살 때 유괴당할 뻔 한 적이 있었거든”

 

레이가 눈을 크게 뜬다. 하긴 터무니 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레이] : ‘영리유괴인가요?’

[사쿠라] : “그래. 고용인 중에 하나가 공범이었는데 내가 놀러가고 싶어하는 것을 이용해서 유괴범에게 연락을 했어 소식을 전한 거야”

[사쿠라] : “날 데리고 나갈테니 준비하라고”

[사쿠라] : “그래서 나갔더니 밖에는 유괴범의 차가 기다리고 있었더란 말이지. 나를 그대로 납치하려고 말이야”

[사쿠라] : “그런데 그곳에 예상밖의 인물이 있었어. .....,그것이 다이스케와 유지”

[레이] : “!”

[사쿠라] : “우리집 제법 변두리에 있잖니? 근처에 곤충을 잡으러 왔던 모양이야”

[사쿠라] : “유괴범들이 차에 밀어넣으려는 것을 울면서 발버둥치고 있으니까”

[사쿠라] : “다이스케가 미끼가 되는 사이에 유지가 우리집에 알려 버렸어. 무모한 데도 정도라는 것이 있는데 말이야”

[레이] : ‘정말 엄청난 이야기네요!’

[사쿠라] : “뭐 실제로 장난아니었어...... 다이스케가 가지고 있던 바늘로 자동차 타이어에 펑크를 내어 버렸는데”

[레이] : “!”

[사쿠라] : “그 덕에 들켜서 몸싸움까지 벌어졌거든. 아직 어렸는데...... 다이스케, 어른을 상대로 물고 할퀴고 정말......”

[사쿠라] : “그 사이에 유지가 현관까지 달려가서 알렸더랬지...... 생각해보면 1분도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는데”

 

그것을 그저 떨며 지켜보고 있었던 나에게는 몇 시간이나 되는양 느껴졌었지만.

 

[사쿠라] : “그 덕에 아무 사고 없이 문제가 끝이 나서, 우리 부모님이 두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셨거든”

[사쿠라] : “그래서 감사를 표하려고 했더니 다이스케네 집이 상당히 힘든 상황이었던 거야”

[사쿠라] : “그다지 부유하지도 않았는데 한 살 아래의 여동생이 중병이었던 터라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상당히 곤란에 처해 있었어”

[사쿠라] : “이것도 다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한 우리 아버지가 도움을 주려고 했지만, 겸손했던 다이스케네 부모님은 그것을 거절하셨어”

[사쿠라] : “어쨌든 이것을 계기로 두 사람이 우리집에 놀러오곤 하게 되었던 거야”

[사쿠라] : “초등학교 2학년 때 내가 고집을 부려서, 다니던 사립초등학교에서 걔네들이 있는 학교로 전학을 한 이후로는 정말 종일 붙어다녔지”

[레이] : ‘전학까지 했나요!?’

[사쿠라] : “응. 가정교사가 담당하던 시간을 늘이겠다는 조건으로. 뭐 가끔가다 빠져나가서는 애들이랑 놀기도 했지만”

[레이] : ‘안 혼났어요?’

[사쿠라] : “성적은 떨어뜨리지 않았으니까”

[사쿠라] : “그 이후로도 다이스케네 집에는 계속해서 악재가 줄을 잇더니”

[사쿠라] : “얼마 안 있어서 부모님은 교통사고로 타계하시고, 여동생인 케이코도 초등학교 졸업하기 전에”

[사쿠라] : “... 그만 죽었어”

[레이] : ‘사쿠라 선배는 그 여동생을 만난 적이 있나요?’

[사쿠라] : “아니. 아버지는 만난 적이 있었던 모양이지만 나는 데려가지 않으셨어. 장례식에는 갔지만 너무 어릴 때라 기억이 잘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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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그랬구나. 아무도 케이코를 만난 적이 없었구나. 그래서 나를 보고 아무도 무슨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사쿠라] : “그런 사정을 알고 있었으니까 학교에서 만날 때마다 격려도 하고, 장난도 치고는 하면서 친구로 지내왔던 거야”

[사쿠라] : “이후로 중학교, 고등학교도 이래저래 같이 다니게 됐고”

[레이] : ‘사쿠라 선배가 일부러 그런 것 아녜요?’

[사쿠라] : “실은 그렇긴 하지. 시험을 쳐서 더 좋은 곳에 가볼까 했었는데... 뭐 어때”

[레이] : ‘좋은 이야기라고 봐요’

 

청초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띄는 레이. 겉보기만 보아서는 나보다 레이가 훨씬 부잣집 아가씨 같지 않을까.

선천적으로 색소가 옅은 우리 집안과는 달리 짙은 흑발에 하얀 피부를 가진 숙녀.

그런 부분에 있어 나는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쿠라] : “그러면 이번엔 레이 차례네”

[레이] : ‘지금 이야기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데요’

[레이] : ‘......거기다 정말 다이스케 선배였는지도 모르겠고요’

 

뭐?

 

[레이] : ‘저, 옛날에 엄청 못된 아이라서 가출을 한 적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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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실은 양아버지의 체벌을 못 참아서 그랬죠)

 

그것은 상당히 의외의 이야기였다.

 

[레이] : '공원에 있던 놀이터에서 하룻밤 자려고 했었거든요'

[사쿠라] : “어릴 때부터 보통 근성이 아니었구나......”

[레이] : ‘아뇨아뇨. 어두워지니까 무서워서 울었는걸요’

[레이] : ‘그랬는데 남자애 하나가 오더니 말을 걸어 오더라구요. 왜 그러느냐면서’

[레이] : ‘그 때는 아직 말을 할 수 있어서, 집에 돌아가기 싫다고 말했어요’

[레이] : ‘그랬더니 어쩜 그 남자애가 같이 있어 주겠다지 뭐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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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그 이유가 자기 동생이랑 꼭 닮아서라는 건 말할 수 없지만......)

 

[레이] : ‘게다가 편의점에서 산 건지 어쩐 건지 빵까지 가져와서’

[레이] : ‘둘이서 먹고 놀이기구 안에 숨어있었던 게 어쩐지 너무 즐거웠어요’

[레이] : ‘그러다 경찰 아저씨께 들켰는데 절 데리고 도망까지 갔었다니까요’

[레이] : ‘결국 잡혀서 엄청 혼이나긴 했지만요’

[레이] : ‘그리고는 부모님과 집으로 돌아간 이후로 그 아이와는 만날 수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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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여태껏 겪어본 그 언제보다도 심한 체벌을 받았다. 병원에 실려가야 할 정도로)

[레이] : (그 상처가 나은 이후로도 나는 매일 밤 방에 갖혀서 가혹한 체벌을 받게 되었다)

[레이] : (표면상 다니게 되었던 학교에서 보내는 낮의 시간과 인형처럼 농락당하고 시달려야 했던 밤의 침실)

[레이] : (마지막으로 있었던 즐거운 기억은 그 공원에서의 수 시간)

[레이] : (그랬기에 나는 잊을 수 없었고 그 남자아이에게 나를 꼭 닮은 여동생이 있다는 것을 기억했다)

[레이] : (그래서, 양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내게 쌍둥이 여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듣고 대번에 알 수 있었다)

[레이] : (나는 병원과 구청 수많은 학교의 자료를 조사해서 오빠를 찾아냈다)

[레이] : (그렇지만 그때, 나는 이미 충분히 망가져 있었다. 오빠를 오빠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레이] : ‘그게 제 첫사랑이었어요’

[레이] : '다이스케 선배가 맞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추억 속의 남자 아이가 다이스케 선배랑 많이 닮았었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레이는 쓴웃음을 지었다.

뭐야 그냥 닮은 것뿐이었단 말이야.

그렇지만......으으응.

난처하게도 짐작가는 것이 있다.

 

[사쿠라] : “그거 언제 일이니?”

[레이] : ‘제가 6살 때 그랬으니까, 사쿠라 선배랑 다이스케 선배가 알게 된 지 한 1년정도 지나서겠네요’

[레이] : ‘아깐 제가 먼저 좋아했다고 해서 죄송해요. 안타깝지만 선배가 먼저였나 보네요’

[사쿠라] : “아니...... 그것은 상관없지만...... 어디 있는 공원?”

[레이] : ‘Y시의 K마을 북쪽에 있던 공원이요’

 

K마을은 분명 이전에 다이스케의 집이 있던 곳이다.

내가 다이스케를 만나고 1년정도 지났을 무렵에 부모님이 돌아가신 다음에 한동안 다이스케는 그 집에서 묵었으니 시기적으로는 맞다.

중학교 이후에 자취할 수 있게 되기 전까지 사먹었다고 했었으니까, 그 부분도 맞아떨어진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쿠라] : “다이스케가 할 법한 일이네...... 여자 앞에서 폼 잡으려고 하는 짓이”

[레이] : ‘역시 그렇게 생각하죠? 물어보기 좀 무섭긴 하지만, 언젠가 꼭 물어봐야겠어요’

 

아름다운 추억.

나의 추억과 우열을 논할 수가 없다.

레이의 추억 또한 순수하고 귀중한 것이니까.

 

[사쿠라] : “다이스케를 좋아하는 거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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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네)

 

[레이] : ‘모르겠어요’

[레이] : ‘저도 제 마음을 잘 모르겠어요’

[사쿠라] : “그러고도 모르겠어? 너도 참 난감한 애다”

[사쿠라] : “사각관계라고 봐야 하나”

[레이] : ‘예?’

[사쿠라] : “아무것도 아니야. 알겠어. 응 이것으로 결정. 너를 라이벌로 인정하겠어, 레이!!”

[레이] : “......”

[사쿠라] : “그런 얼빠진 얼굴 하면 못써!”

[사쿠라] : “애초에 네가 양보하지 않아도 다이스케의 마음 같은 것은 얼마든지 사로잡아 보여주지!”

 

순간 레이의 동공이 커졌고.

이내 레이의 얼굴에는 웃겨서 죽을 것만 같다는 미소가 머물렀다.

 

[사쿠라] : “얘 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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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 (정말 오빠 친 오빠가 아니었더라면 정말 멋진 라이벌 관계가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레이] : (그렇지만, 친 오빠니까...... 저는...... 안 되겠네요......)

 

[레이] : ‘미안해요. 너무나도 사쿠라 선배다운 소릴 하니까 그만 안심이 돼서’

 

......

그렇구나. 조금 전까지 완전히 스스로를 잃고 있었으니.

확실히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미친 게임에 먹혔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을 다잡고 게임에 임하자.

레이와의 승부는 그 이후에 계속하는 거야.

 

[레이] : ‘그러고 보니 마이 선배는 어디로 간 거죠?’

[사쿠라] : “어? 그러고 보니 바보를 끝장내겠네 어쩌네 했는데......”

 

로비를 둘러 봐도 마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로 갔지......?

 

[다이스케 시점]

 

[다이스케] : “......”

 

......

......

......

 

[마이] : “기대했어? 응? 기대했어?”

 

베시시 웃는 마이.

캐미솔이 마이의 배 위로 올라가지 않았다.

배꼽이 있을 장소에는 웬 종이가 한 장 붙어있었다.

 

‘아깝습니다! 다이스케의 모험은 이걸로 끈나씀미다!’

 

누가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것 같은 기분이다.

머리가 돌아갈 틈도 없었다.

 

[다이스케] : “이 바보가~”

[다이스케] : “경고를 하려면 좀 평범하게 하든가!”

[마이] : “냐하하하하!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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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나참, 귀찮게 하지. 도와주는 거 이번이 마지막이다!)

 

모를 리가 없다.

애초에 처음부터 수상쩍 스러웠고.

마이에게 혼나는 건 이걸로 두 번째니까.

사랑놀음에 정신줄 놓지 말란 소리겠지.

지금은 일촉즉발. 방심하는 순간. 언제 주사기에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잖아.

잘 알겠어.

 

[마이] : “반성 좀 했어?”

[다이스케] : “그래. 미안”

[마이] : “참고로 한 번만 더 묻는데......기대했어?”

[다이스케] : “했다”

[마이] : “냐아하하하하! 좋아 용서하게쓰! 사쿠링도 조만간 머리가 식을 테니까, 나중에 잘 이야기해서 지금은 보류해두지~”

 

뭐?

 

[다이스케] : “사쿠라한테도 무슨 소리 한 거야?”

[마이] : “음~ 쪼끔. 로비에서 엄청난 일이 벌어진 탓에”

 

지금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다이스케] : “무슨 일!?”

[마이] : “이보게 잠깐! 지금은 안 돼. 다이스케는 세 시간 꼭꼭 쉬고 몸이 좋아져서 나와야 하는 거잖아”

[다이스케] : “위험한 건 아냐?”

[마이] : “이제 괜찮아”

 

거 한마디 한마디 되게 신경쓰이게도 하네...... 그러나 나도 미인계에 홀딱 넘어간 입장이다 보니, 일절 세게 나갈 수가 없다.

어쨌든 간에 마이 말이 맞다.

사쿠라의 문제는 둘째 치더라도 지금 필요한 문제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6시 쯤 나가면 되나. 그 전에 방침을 정리해서 다 같이 의논해야겠다.

 

[다이스케] : “여러모로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

[마이] : “냐하하! 놀리는 게 재밌었으니까 괜찮아! 오히려 사내 마음에 기스났다면 미안해~”

 

그걸 따질 입장이 아닌데.

 

[다이스케] : “게다가 괜히 의심살 거 아냐. 이렇게 둘이서만 있었으니”

[마이] : “아~ 그건 그렇겠다. 그럼 슬슬 물러갈까나”

[마이] : “나머진 밖에 나가서 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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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말이 그렇다는 거지)

[마이] : (그래봤자 다들 나가지도 못할텐데)

[마이] : (......)

[마이] : (......어차피 그렇다면 그냥 해버려도 괜찮았을지도 모르겠네~ 다이스케하고라면)

[마이] : (마이 이 바보. 마이는 파파 거 아녔어?)

[마이] : (변덕이 좀 심했나. 그만 평소대로 돌아가야지......)

 

엉?

그 의미심장한 말에 대한 질문이 나가기도 전에.

 

나는. 나와 마이는.

무시무시한 것을 보고 말았다.

문이 정말 살짝 열려있었던 것이다.

그 작은 틈사이로 보이는 번쩍번쩍 빛나는 두 쌍의 눈동자

 

[사쿠라] : “......”

[레이] : “......”

 

혼돈의 막이 열린다.

 

[레이*사쿠라] : “무얼 계속할 셈이지!!!” ‘뭘 계속할 셈이에요!!!’

[마이] : “어머나 세상에!?”

 

마이는 그 혼돈에 파묻혔다.

......

어째 지금 나갔다가는 뼈도 못추릴 것 같다.

문은 잠궈 두자.

자, 그럼 머리도 좀 맑아졌겠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볼까.

 

...

......

.........

 

[다이스케] : “헉!?”

 

나... 잠들었었나!?

노트북의 화면을 보고 얼굴이 파래진다.

20시...... 반!?

예정시각보다 두 시간이나 지났다......!!

침을 꿀꺽 삼키고 로비로 뛰쳐나갔다!

 

[다이스케] : “아 미안!!”

 

나와 유지 이외의 다섯이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다.

 

[츠바사] : “아 괜찮아 괜찮아. 계속 긴장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하지.”

[리리코] : “몸은 좀 어때요? 상처 안 아파요......?”

 

급해서 그만 신경을 못 썼지만, 머리는 완전히 괜찮아졌다.

붕대는 일단 그냥 둘까.....

 

[다이스케] : “고마워, 리리코. 사쿠라도 치료해줘서 땡큐”

[사쿠라] : “흥! 원래 돌머리였으니까 그냥 둬도 괜찮았던 것 아니니!”

 

어, 어라?

어째 아까 전이랑 분위기가 다르다.

 

[마이] : “......”

[레이] : “......”

 

두 명이 눈을 피하는 게 좀 꺼림칙하다.

 

[사쿠라] : “무 무얼 그렇게 쳐다보니! 이 변태! 음란해! 코피 바보!”

 

헉! 좀 심한 것 아닌가. 갑자기 왜 이런데 사쿠라 이 녀석.

그런 것 치고는 상당히 기합이 들어간 눈으로 쳐다보는 게 또 이상하다......

 

[사쿠링도 조만간 머리가 식을 테니까, 나중에 잘 이야기해서 지금은 보류해두지]

 

그렇구나.

이건 마이의 설득에 의한 결과인 듯 하다.

버터플라이 게임이 끝날 때까지 일단 유보. 마음을 다잡고 연애에 구애되지 않고 게임을 진행시키자.

그렇지만 굳이 말로 하자니 껄끄럽다.

그러니까 모두의 앞에서 이렇게 굳이 심통맞은 태도를 보여서 낮에 만들어진 무른 분위기를 불식시키자는 것.

참 요령도 없지.

하긴 사쿠라답다면 답다고 할 수는 있겠군.

어쩔 수 없지...... 맞춰줄까.

 

[다이스케] : “무슨 헛소리래. 난 그런 빈곤한 가슴에 흥미 없는데”

 

걸레가 되도록 맞았다.

사쿠라. 이유는 모르겠지만 레이와 마이까지 합세하여.

 

[다이스케] : “그렇게 했으면 하는데”

[다이스케] : “다들 협력해 주겠어?”

 

방에서 궁리한 아이디어를 모두의 앞에서 밝혔다.

어쨌든 간에 유지를 설득해 본다.

유지에게서 [주모자]로부터의 명령에 관해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는다.

아마도 유지는 “[교환자]를 사칭하라”는 명령 이외에도 다른 어떠한 명령을 받았을 것이다.

그 명령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것이었기에 유지는 ‘모조리 죽여버리면 클리어’라는 무지막지한 결론에 이르렀을 테지.

그러나 그 명령의 내용만 안다면 [주모자]의 목적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그를 기대하고 바리게이트를 철거했으면 한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 아이들의 반응은 눈썹을 찌푸리거나 고개를 갸웃거리는 등 부정적이었다.

그건 이해한다.

그 때 유지는 진심으로 모두를 죽일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는 일단 안전 조치를 제안했다.

 

[다이스케] : “유지하고는 나 혼자 직접 만날게. 너희는 다른 방에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있어”

[다이스케] : “녀석이 밖으로 나오려고 할 경우,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와서 이야기를 해볼게”

[다이스케] : “만약 녀석이 내 방에 까지 들어와서 날뛴다면, 그때는 문을 잠궈 녀석을 죽이겠어”

[사쿠라] : “뭐......!?”

[츠바사] : “죽이겠다니, 다이스케......!”

 

몇 번이고 생각한 끝에 한 각오와 결론이었다.

 

[다이스케] : “역할이 무엇이든 간에 모두를 죽이겠다는 녀석을 그냥 둘 수는 없잖아”

[다이스케] : “리리코, 어떻게 생각하지?”

[리리코] : “네, 그건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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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리코] : (......어라......? 다이스케 군이 [주모자]가 아니었나......? 아니, 이것 또한 함정...... 일까......?)

[리리코] : (모르겠어...... 그렇지만)

 

[리리코] : “하나 부탁이 있는데, [교환자]라고 하는 유지 군에게 [수호자]와 연계해 달라고 말해 줄래요?”

 

과연 의미가 있기나 할까? 오히려 유지를 [수호자]가 수호하게 하는 건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

 

[다이스케] : “그 문제는 고려해 볼게. 그런 이야기를 할 만한 상황이 오지 못할지도 모르니까”

[리리코] :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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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사] : (......리리코 녀석 이제와서 괜한 짓 하는 거 아냐? 좀 찔러놔야 하나)

 

[츠바사] : “다이스케 너랑 유지 둘이서만 만난다는 상황은 괜찮나? 지금까지 기본적으로 3인 그룹으로 움직여왔잖아”

[사쿠라] : “나도 가겠어”

 

조용한 사쿠라의 목소리에 아이들의 시선이 모였다.

 

[사쿠라] : “오랜친구의 일이고, 꼭 해야할 말도 있으니까”

[레이] : ‘할 이야기요?’

 

그건 뭐지. 나도 못 들었는데.

 

[사쿠라] : “다이스케 너한테는 나중에 얘기해줄게”

[마이] : “아~”

[츠바사] : “아~”

[리리코] : “아......”

[레이] : ‘아아’

 

뭐야. 왜 나만 빼고 다들 알겠다는 얼굴이야.

 

[레이] : ‘저기, 그런 이야기는’

[사쿠라] : “괜찮아 나도 잘 알아. 잘해 볼 테니까, 믿어봐”

[레이] : ‘알겠어요. 믿을게요’

[다이스케] : “뭔 소리래?”

[마이] : “다이스케는 이해 못할 일이지......”

 

거 되게 신경 쓰이네......

 

[다이스케] : “그래 뭐, 됐고. 따로 의견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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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사실 사쿠링과 다이스케 두 사람만 남는 상황이라는 건데, 과연 걸고 넘어지는 사람이 있을까나?)

 

의견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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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 (안 나오네 ~ 다들 어지간히도 유지가 무서운가 봐)

 

...

......

.........

 

바리게이트를 철거하는 데는 30분 정도가 걸렸다. 그 전과는 달리 옆으로 치우기만 하면 되었기에 빨랐다.

중간부터 나와 츠바사가 문을 잡고 있었다.

안에서 나오려는 낌새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츠바사] : “뒷일 부탁해. 사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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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바사] : (결국 별 피해는 없는 상태로 진정되었군. 유지가 남자답게 제대로 한 방 터뜨리기만을 기대해 볼까)

 

[사쿠라] : “내게 맡겨!”

 

츠바사와 교대하여 사쿠라가 문에 기댄다.

이번에는 나와 밀착하지 않을 수 있도록 자세를 잡는다.

 

[리리코] : “다이스케 군, 조심해야 돼요”

[다이스케] : “그래”

[레이] : ‘두분 다 위험하지 않도록 주의하시구요’

[마이] : “위험해지면 급소에 한 방 넣는 거야!”

 

그런 응원(?)도 받아 가며.

 

[다이스케] : “그럼 다들 방으로 들어가 있어. 문을 세 번 두드리면 우리라는 뜻이니까, 나오면 돼”

 

모두가 방으로 들어가고, 나와 사쿠라만이 로비에 남는다.

 

[다이스케] : “사쿠라, 아까 유지한테 할 이야기가 있다는 건......”

 

문에서 떨어지기 전에 의문을 입에 담았다.

바로 대답이 있었다.

 

[사쿠라] : “유지 걔, 날 좋아한대”

 

그건

정말 놀랐다.

 

[다이스케] : “사쿠라 넌, 이전부터 유지 마음 알고 있었어?”

[사쿠라] : “아니...... 우리 참 바보 같다”

 

제일 바보인 것이 나. 사쿠라가 두 번째.

분명 유지는 전부 알고 있었겠지.

사쿠라가 나를 좋아하고, 나는 그걸 몰랐다는 사실을.

그래도 사쿠라가 좋았다.

우리 세 소꿉친구의 관계는 모래 위에 세워진 성과 다름없는 것이었다는 소리다.

청산해야만 한다.

그리고 나서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가 친구로 있을 수

아니, 그리기는커녕 살아남을 수나 있을지 알 수 없다.

 

사쿠라더러 떨어지라고 한다.

 

[다이스케] : “문 열기 전에 한 마디만 하자”

[사쿠라] : “뭐니?”

[다이스케] : “생각났는데. 사쿠라, 그 주사기 지금 가지고 있어?”

[사쿠라] : “응 있는데”

[다이스케] : “잠깐 잡고 있어봐”

 

나는 방으로 돌아가서

서랍에서 주사기를 찾아서 돌아왔다.

 

[다이스케] : “이게 루나가 가지고 있던 주사기”

[사쿠라] : “정말 보기만 해선 전혀 차이를 모르겠는걸...... 그런데 이것을 어쩌려고?”

 

잘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는.

하지만

 

[다이스케] : “뭔지는 몰라도 유지는 안고 있는 말도 안 되는 명령 때문에 목숨이 위험할지도 몰라”

[사쿠라] : “아......”

[다이스케] : “그런 상황이 오면 죽이되든 밥이되든 해 봐야지”

 

그저 위안삼하 하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

애초에 어느 쪽이 약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사용할 결심을 할 수나 있을지 의심스럽다.

더군다나 약은 사전에 투여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문제가 생기기 전에 약인지 독인지도 모르는 것을 사용하는 건 오히려 위험하고.

그래도 최소한의 위안거리리라도 됐으면 좋겠다.

 

[다이스케] : “그럼 연다”

 

문을 열기로 한다.

 

[다이스케] : “사쿠라. 일단 물어나 보는데 네 방에 들어가 있을래?”

[사쿠라] : “그럴 생각 애초에 없었어”

 

그렇겠지. 나도 그렇다.

유지는 절대로 우리를 공격하지 않을 것이다.

멀리서 떠들어 봐야 설득할 생각이 없는 것이나 다름 없다.

 

손잡이를 돌린다. 잠겨 있지는 않았다.

문을 살짝 열고

 

[다이스케] : “유지! 얘기 좀 하자!”

 

문을 열고서야 깨닫는다.

문을 살짝 열었더니 바로 유지의 등이 보였다. 문에 반쯤 걸쳐지도록 기대어 앉아있었던 것이다.

대답은 없다. 잠이라도 든 건가.

 

[사쿠라] : “유지! 할 얘기가 있어!”

 

사쿠라의 목소리에 유지의 어깨가 살짝 꿈쩍인다.

자고 있지는 않은 모양.

 

[다이스케] : “유지, 잘 들어. 지금 그리로 가려고 하는데”

[유지] : “오지 마”

 

명확한 부정, 거절하는 목소리가 돌아왔다.

 

[사쿠라] : “유지...... 왜 그러니? 그때 날 왜 때렸지?”

 

때려? 그런 이야기는 못 들었는데.

 

[유지] : “사쿠라...... 아까는 미안했다”

[유지] : “그래도 오지는 마. 마지막 부탁이다”

 

유지의 마지막 부탁이 여태껏 몇 번이나 있었던가.

다만 내가 아는 한, 그 가운데 단 한 번도 진지한 부탁은 없었다.

 

[다이스케] : “여기서 말하면 들을 거지?”

[유지] : “아무 얘기도 듣고 싶지 않다고”

[사쿠라] : “유지, 너 정말 다이스케를 의심하니?”

[유지] : “그래 의심했어. 그렇지만 이젠 아니까, 의심 안 해”

[유지] : “그냥 내 질투였다는 거 알겠으니까”

 

그런가.

사쿠라에게 사랑받고 있는 나는 유지에게 있어서 [주모자]였으면 좋을 존재였단 것이다.

당연히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다 유지를 이렇게까지 몰아넣은 버터플라이 게임 때문이다.

유지를 원망할 일이 아니다.

이야기를 진행시켜야겠다. 사쿠라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고 말을 꺼냈다.

 

[다이스케] : “난 [공유자]다”

[사쿠라] : “난 [진단자]. 다이스케를 의심하기 싫어서 조사했어. 틀림없는 [공유자]야”

 

유지의 어깨가 꿈틀거린다.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사쿠라] : “그래서, 너는 계속 [교환자]라고 할 셈이니?”

[유지] : “아아, 그런가 보더라......”

 

그런가 보더라.

그 부자연스러운 표현에 우리는 확신할 수 있었다.

유지는 [배신자]다.

 

[유지] : “이제 됐잖아. 내가 언제 다시 너희를 습격할지 모른다고! 얼른 방으로 돌아가”

[다이스케] : “그 축처진 등짝을 보니까 더 이상 난동을 부릴 기력이 없다는 건 알겠다”

[다이스케] : “그래도 뭐 굳이 날뛰겠다면야 정수리에 한 방 더 먹여주지”

[유지] : “아아...... 그건 제법이더라”

 

몹시 가늘었지만, 유지는 살짝 웃는다.

 

[사쿠라] : “우린 유지를 도와주고 싶어서 온 거야. 분명히 난처한 상황일 테니까”

[사쿠라] : “문제가 생기지 않을 범위에서 질문에 대답해줄 수 없겠니?”

 

사쿠라의 제의에 유지는 등을 돌린 채로.

 

[유지] : “먼저 다이스케랑 할 얘기가 있는데. 좀 비켜줄래?”

 

의외의 제안을 했다.

 

[다이스케] : “사쿠라......”

[사쿠라] : “알겠어. 로비 구석에서 기다릴 테니 이야기가 끝나면 불러 줘”

 

말한 대로 사쿠라는 거리를 두고 8시와 9시 사이 정도 되는 곳으로 가서 벽에 기대어 기다린다. 작은 목소리라면 들리지 않을 거리다.

 

[다이스케] : “그래...... 할 말이 뭔데?”

 

나는 그렇게 물었지만.

 

[유지] : “사쿠라를 잘 부탁한다”

 

제대로 대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운 대답이 있었고.

 

[유지] : “난 이제 글렀다. 그러니까 부탁하자”

 

그런 말을 들었다.

이제 글렀다. 그러니까 부탁하자.

그 말이 의미하는 것은

 

[다이스케] : “너 지금 무슨 소리하냐?!”

 

그걸 어떻게 믿어.

 

[유지] : “말 못해”

 

딱잘라 거절당해도.

 

[다이스케] : “그런 소릴 순순히 듣고 있으라고! 장난할래? 한 방 날린다!”

[유지] : “오냐...... 마음대로 해라. 아까 사고 좀 쳤으니 사죄의 뜻으로 얼마든지 맞아주마”

[유지] : “차라리 때려죽여라...... 차라리 너한테 죽는다면 속이나 시원하겠다”

 

유지......

그렇게나, 넌 그렇게나 절망적인 상황이었던 거냐?

 

[다이스케] : “지금부터 하는 소리는 내 혼잣말이니까, 대답 안 해도 된다”

[다이스케] : “[배신자]에게 [주모자]는 자살하라는 명령을 할 수가 없어”

[다이스케] : “실행하면 [배신자]가 직접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명령을 내릴 수 없다는 건......”

[다이스케] : “[식칼로 목을 찔러라] [12시가 넘었을 때 방 밖에 있어라]같은 건 절대로 안 된다는 소리지”

 

입 밖으로 나오는 소리에 섬뜩한 생각이 정리되어 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쿠라를 지키겠다던 유지.

자신과 사쿠라 이외에 모두를 죽이면 게임 클리어라고 하던 유지.

요컨대.

정답은 한정되어 있다.

 

[다이스케] : “그래서 [배신자]를 명령으로 죽이기 위해서는 본인에게 있어 실행하기 곤란한 명령을 내릴 수밖에 없어”

[다이스케] : “좋아하는 사람을 죽이라고 하든가”

 

유지가 처음으로 뒤를 돌아봤다.

눈동자에는 아까 전에 볼 수 있었던 그 광기를 지닌 빛이 머물러 있다.

 

[다이스케] : “조금 전에 알았어. 유지 네가 사쿠라를 좋아했다는 거. 사쿠라가 나를 좋아했다는 거”

 

유지는 입을 다물고 있다. 이야기를 듣고 있다.

 

[다이스케] : “상상도 못했는데. 너희가 보기에는 둔한 얼간이로 보였겠지. ......미안하다”

[유지] : “......”

 

시선을 피하는 유지.

 

[유지] : “고백했냐 사쿠라는?”

[다이스케] : “그건 사쿠라한테 들어”

[다이스케] : “하나 말해줄 수 있는 건 지금 나랑 사쿠라는 사귀고 있지 않아”

[유지] : “뭐가 문젠데!”

[다이스케] : “사쿠라가 매력적이라는 건 알겠어. 그렇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니까. 내게 있어서도 네게 있어서도. 그리고 사쿠라에게 있어서도”

[유지] : “참 너답다. 병신같이 성실한 바보로 별명 바꾸지 그러냐”

[다이스케] : “시끄럽고. 하여튼 간에”

[다이스케] : “네가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명령을 받았든 간에, 나는 네 앞에 똑바로 설 거다”

[다이스케] : “그러니까 아직 내게 사쿠라를 책임지게 할 생각은 하지마라. 알겠냐?”

 

더보기
[유지] : (......)

[유지] : (......글렀다. 평소 그 모습. 그러니까 이해 못하겠지)

[유지] : ([주모자]의 악의와 그 악랄한 지혜를 아직까지도 얕보고 있어)

[유지] : (......그것도 어쩔 수 없나)

[유지] : (......슬슬 포기할 때도 됐나)

 

유지는 다시 등을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유지] : “사쿠라를 불러 줘”

 

[사쿠라] : “이제...... 내가 사과할 차례?”

[유지] : “뭐가?”

[사쿠라] : “그때는 제대로 된 대답도 해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거기다...”

[유지] : “아~ 다 이야기 안 해도 돼”

[유지] : “대충 알고 있었으니까”

 

무력한 목소리.

사쿠라의 얼굴이 단번에 붉게 물든다.

 

[사쿠라] : “무얼 알고 있었다는 거니!? 그래 좋아, 네가 절대로 모를 이야기를 해주겠어!”

[사쿠라] : “좋아하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는 이곳에서 나가서 다시 제대로 된 승부를 해야 해!!”

[사쿠라] : “다이스케가 상황을 제대로 알게 된 이제야 겨우 공평하게 되었으니까!”

[사쿠라] : “나도 그, 유지 유지 네가...... 그렇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이제 공평한 거야 알겠니!?”

 

어마어마하게 빠른 목소리로. 어마어마한 열기로.

 

[사쿠라] : “그러니까 앞으로 어떻게 될 지는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어!”

[사쿠라] : “나도 모르니까! 있었던 일 전부 없었던 걸로 하고, 처음부터 다시 하는 거야!!”

 

이 얼마나 사쿠라다운 결단인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까, 조금만 기다려 봐]

실로 제멋대로인 이야기.

하지만, 얼굴을 붉히고 그렇게 말하는 사쿠라를 남자는 사랑스럽게 여기고 만다.

더 없이 다정하고 우유부단한 억지스러운 아가씨.

 

더보기

[유지] : (......그렇구나)

[유지] : (나한테 아직 기회는 있단 거구나)

[유지] : (......살아남을 수 있을 때의 이야기지만)

[유지] : (......그러나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사쿠라와 나 둘 중 하나)

 

유지도 나도 그런 사쿠라를 좋아하게 되었지.

 

[유지] : “......”

[유지] : “그렇지. 내가 잘못했다”

[사쿠라] : “알면 됐네요!”

 

가슴을 펴는 사쿠라.

그러더니. 무슨 생각인지 유지는 반쯤 열린 문 사이로 손을 내밀었다.

 

[사쿠라] : “이건 뭐지?”

[유지] : “처음부터 다시 하자며? 그럼 화해를 해야지. 화해의 악수”

[유지] : “다이스케부터. 미안했다”

[다이스케] : “그래. 나도 미안했어”

 

나는 유지의 손을 잡는다.

유지는 내 주먹을 힘껏 잡았다.

힘껏.

 

[유지] : “이번엔 사쿠라”

[사쿠라] : “어, 어쩐지 부끄러운데”

[다이스케] : “어릴 땐 잘만 잡았으면서”

[사쿠라] : “이제 애가 아니잖아!”

 

그러게나. 정말이다.

 

[다이스케] : “어느샌가 이렇게 컸네 우리 모두”

[유지] : “머릿속은 그다지 바뀐 것 같지도 않은데 말이지”

[사쿠라] : “......”

 

망설임이 사라진 동작으로.

 

사쿠라는 유지의 손을 잡았다.

 

[사쿠라] : “바뀌지 않았어”

[사쿠라] : “앞으로도 우리 소꿉친구 셋이 제일 친한 친구니까”

[사쿠라] :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 해도. 그것 때문에 싸우고 얼굴 붉혀도, 이제 안 된다고 생각해도”

[사쿠라] : “이렇게 화해할 수 있다구. 그러니까 걱정할 것 없어”

[사쿠라] : “그리고, 셋이 있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너희 둘은 유괴범을 물리쳐 줬잖니!”

[사쿠라] : “그 때보다 훨씬 컸고, 나도 더 이상 울고만 있지는 않아!”

[사쿠라] : “그러니까...... 우리 셋이서 이겨내자. 약속, 알겠니?”

 

사쿠라가

그렇게 말하고

 

대답은 없다.

 

[사쿠라] : “......”

[사쿠라] : “유 지?”

 

문 사이로 튀어나온 손이 떨리고 있다.

 

[사쿠라] : “왜 그러니, 유지?”

 

어쩐지.

기분 나쁜 예감을 받았다.

 

[다이스케] : “문 열어 보자”

 

다소 거칠게 사쿠라를 밀어내고 문을 열려고 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문을 꽉 잡고있는 것이 느껴진다.

 

[유지] : “좀 놔......둬라...... 지금 얼굴...... 보여주고 싶지 않으......니......까, 으윽”

 

더 이상을 참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유지는 극렬한 고통이 깃든 신음소리를 흘리기 시작한다.

 

[사쿠라] : “꺄, 꺄아아아아!!”

[사쿠라] : “유지! 유지, 유지이이!!!!!”

 

내밀고 있던 손은 사쿠라를 다가오지 못하게 하려는 듯 휘젓고 있지만, 그래도 사쿠라는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다이스케] : “유지, 유지! 정신차려!! 무슨 일이야, 이 바보야!!”

[유지] : “끄 끄아아아악!! ......너, 이이이느......스아라악!”

 

지독한 오열과 경련.

그래도 문은 열리지 않는다.

설마, 지금 독에 당한 건가!?

유지가 규칙을 어겨서 패널티가 발동했단 말인가!?

 

[유지] : “어어스아”

[사쿠라] : “안 돼에에에에에!!”

[다이스케] : “사쿠라! 약을 쓰자!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사쿠라] : “윽”

[사쿠라] : “그 그렇지만 어느 게 진짠지”

 

젠장!!

어째서 주사기가 두 개나 있는 거야!

어째서 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런 중요한 결정을 하게 하는 거냐고!!

내가 어떻게 알아! [은둔자] 이 멍청한 자식이 무슨 생각으로 약이라면서 이걸 넘겼는지!

 

그렇지만 선택해야만 한다......!!

 

[다이스케] : “사쿠라......! 내 주머니에 있는 걸 꺼내서 해!!”

 

유지는 팔을 당겨 문을 닫으려고 하고 있다!

나는 그걸 막는 게 고작이다!!

 

[사쿠라] : “뭐? 그 그렇지만 그건 루나”

[다이스케] : “난 [은둔자]가 루나를 돕고 싶어서 약을 뒀다고 믿고 있어! 힘 안 빨래 이 근육 바보!!”

[사쿠라] : “!”

[다이스케] : “얼른 하라고오오오!!”

 

굳어 있던 사쿠라가 급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 바지 주머니에서 주사기를 꺼내 캡을 벗긴다.

 

[사쿠라] : “유지 유지! 얼른 구해줄게......!”

[사쿠라] : “하느님”

 

온 힘을 다해 문을 붙잡으며.

나 또한 기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약을 주사하려는 그 움직임이 느리게 보이는 것은 사쿠라가 너무 당황해서, 혹은 1초라도 아까워하는 내 심경 때문이리라.

익숙치 않은 손재주로.

 

유지의 팔에 손을 대고.

주삿바늘을 꽂은 다음

실린더를 밀어넣는다.

 

...

......

.........제발 부탁이다.

효과가 있기를......!!

 

[유지] :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악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으 어 어 어 어 어 어!!”

 

고통은 그저 심해졌을 뿐이라는 듯이.

유지는 한층 격렬한 절규를 지르다가.

 

뚝.

문을 붙잡고 있던 힘이 사라졌다.

 

[다이스케] : “......”

[사쿠라] : “어?”

 

거의 힘을 넣지 않아도 문은 열렸다.

유지는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유지의 창백한 얼굴은 눈물에 젖어 있었다.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 문을 잡고 있었던 건가.

 

움직임도. 호흡을 하는 기색도.

바보같이 밝기만 하던 미소도.

더 이상은 없었다.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유지는 죽었다.

유지는 죽었다.

유지는 죽었다.

 

......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나와 사쿠라는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사쿠라의 눈은 죽어 있었다.

내 눈도 마찬가지겠지.

뭘 한 거지.

도대체 무슨 헛짓거리를 한 거지.

아무 것도 이해하고 있지 않았다.

아무 것도 통하지 않았다.

우리는 무력했다.

 

[사쿠라] : “다이스케......”

 

죽은 눈동자에 머무는 것은

 

[사쿠라] : “약, 아니었잖아...!!”

광기였다.

 

[다이스케] : “내, 잘못이야”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사쿠라] : “약이 아니었다구! 약이 아니었다구! 약이 아니었다구! 약이 아니었다구! 이건 약이 아니었던 말이야!!”

[사쿠라] : “다이스케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그래. 내 잘못이다.

내가 [은둔자]를 믿은 것이 잘못이다.

내가 [은둔자]의 선의를 믿은 탓에 유지는 두 배나 되는 독약의 고통을 받고 말았다.

얼마나 괴로웠을까.

그렇게 만든 것은 나다.

 

[사쿠라] :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때문이야! 다이스케 때문이야!”

 

나도 알 수 있다..

사쿠라는 나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상처 입히는 것으로 자신을 상처 입힌다.

유지를 죽게 만든 죄책감을 견딜 수가 없었기에.

스스로 자신에게 다시 나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려는 것이다.

말로서 자살하려는 것이다.

막아야 된다.

막아야 되는데

 

[다이스케] : “그래 내 잘못이야”

 

안 되겠다.

유지를 구하지 못한 나는.

사쿠라를 구할 수 없는 말을 지어낼 수 없다. 할 수도 없다.

그저 사쿠라를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꽉, 꽉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사쿠라의 말이라는 칼날을 단지 다가가 내 몸을 방패 삼아 막아줄 수밖에...... 없었다.

나를 책망하는 목소리.

사쿠라 자신을 책망하는 목소리.

멈추지 않고 흐르는 눈물을 사쿠라의 것이자 나의 것이며 피이며 독이며 슬픔이며 죄책감이며 몸을 내던져 하는 애도의 표현이었다.

이 눈물이 말랐을 때, 우리는 다시 설 수 있을까.

유지의 죽음에서 무엇을 배우고, 유지가 지켜낸 무언가를 어떻게 이어가면 될까.

하나도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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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사쿠라] : (유지...... 다이스케...... 미안해......)

 

모기 울음소리처럼 무슨 말을 중얼대는 사쿠라를 끌어안고 있었다.

...

......

.........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내 품 안에서 사쿠라는 조용해졌다.

잠이 들었다기 보다는.

너무나도 큰 고통과 슬픔에 못이겨 스스로 의식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

뜨고 있는 것인지, 뜨지 않고 있는 것인지 모를 눈동자

완전히 얼이 빠진 표정.

나는 그런 사쿠라를 방으로 옮겨서 침대에 눕혔다.

 

이제 사쿠라는 아무 것도 보지도 듣지도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리라는......

그런 절망적인 상상이 들 만큼 사쿠라에게서는 무언가가 결여되어 있었다.

끊어진 유대.

이제 사쿠라의 마음도 유지의 마음도 이해를 못하겠다.

하지만 나는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 아무 것도 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진정한 어둠 속에 있을 때, 사람은 기도하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사쿠라가 세상과 단절한 것은 스스로와 싸우기 위해. 등에 업은 허물과 마주서서 극복하기 위해.

부디 그렇기를.

신도 부처도 믿지 않는 나는 죽은 친구들에게 그렇게 기도했다.

 

유지의 시신은 토모에나 사쿠라의 것보다 훨씬 무거웠다.

그렇지만 10년도 더 곁에 있었던 비할 데 없는 목숨의 무게 치고는 너무나도 가벼워서 빈 껍데기만 같았다.

 

모두에게 사정을 말한다.

그렇게 말은 해도 딱히 이렇다 할 사정은 없다.

유지가 죽었다. 이유도 말하지 않고, 악수를 하고는 바로 죽었다.

사쿠라는 쇼크를 받아 방에서 쉬고 있다.

그게 다다.

주사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다섯.

나와 레이를 제외한 셋 중 하나가 [주모자].

주사기의 존재를 알릴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남은 하나의 주사기. 약이 든 주사기에 관해서는 특히나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무도, 어떤 소리도 하지 않았다.

책망하지 않는 대신 격려하지도 않았다.

 

가라앉은 표정이 나를 비난하고 있는 듯이 보였던 것은 아마 스스로의 죄책감 때문.

 

사실은 악의로 가득 찬 [주모자]와

교활한 [은둔자]와

비협력적인 [수호자]의 얼굴.

모두 주먹이라도 한 대 날려줄까 생각했다.

전부 죽여버리겠다던 유지에 대해 공감이 피어나도 그다지 위화감이 생기지는 않았다.

 

무엇을 목적으로 하면 좋을지

갈수록 알 수가 없다.

내 목숨. 친구들의 목숨. 그렇지 않으면 명예나 사랑 같은 숭고한 것.

무엇을 지켜야 하지? 무엇에 가치가 있지?

애초에 친구라는 건 뭐지?

 

[다이스케, 약속. 꼭 살아야 돼]

 

루나와의 약속이 어렴풋이 가로막는다.

토모에의 복수를 한다.

루나의 복수를 한다.

그리고 유지의 복수를 한다.

믿는 사람만을 살릴 생각이라면 실력행사로 나가면 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주모자]의 [고발]을 제대로 하지 않고서는

진정한 의미에서 이 게임에 이겼다고는 할 수 없다.

머리가 한창 사고를 하는 가운데.

뭔가 답이 떠오른 것 같았지만

 

나는 쓰러졌다.

 

내 몸이 왜 이러지.

나도 모르게 룰을 위반해 독 캡슐이 터지기라도 한 건가.

아마 아닐 것이다. 아까 전에 유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독의 고통은 예상할 수 있다.

나는 단지 머리가 어질어질 할 뿐이다.

 

[??] : “열이 완전히--”

[??] : “--벌써 시간--- ---없다구!!”

 

어쩐지 내 몸의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깨닫는다.

머리를 다쳤던 영향이 아직 남은 것일까.

루나도 게임 중에는 아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는데. 한심하다 진짜.

어쩌면 바보답지 않게 머리를 너무 굴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좋은 구실이. 대의명분이 생겼다.

그렇게 생각하는 내가 분명히 있었다.

죄다 포기하고 쉴 구실이

 

안 돼. 나는 지금 결단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오늘도 누가 죽고 말 거야.

얼른 누구를 [고발]해야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빙글빙글.

...

......

...

 

더보기

[리리코] : "으으으읏!"

 

방에서 적신 타올을 짠다.

다이스케 군이 열을 내며 쓰러졌다.

머리에 생긴 상처 때문일지도 몰라.

상처로 세균이 들어갔을지도 몰라.

친구를 해친 죄책감 때문일지도 몰라.

음모를 획책하는데 열중한 나머지 지혜열이 나는 것일지도 몰라.

이대로 다이스케 군이 죽어버린다면 게임은 끝날지도 몰라.

다이스케 군이 죽어버린다면 더 이상 밤에 겁낼 일이 없을지도 몰라.

 

아아아, 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지.

맞아. 이 타올을 다이스케 군의 머리에 얹어줘야지.

 

[츠바사] : "리리코"

 

츠바사 군~ 츠바사 군.

저 이 타올을 다이스케 군의 머리에 얹어주려는데.

오늘 밤에는 어떡하면 좋죠?

 

[츠바사] : "너 자신을 지켜"

 

그래도 돼요. 기뻐라.

 

[츠바사] : "너한테만 말해줄게. 난 [공유자]였어"

 

어머. 제게만 말해준다니, 너무 기뻐요.

겨우 절 믿어주는 거네요

그렇지만.

그렇지만, 츠바사 군.

정말 다이스케 군이 [주모자]인가요.

 

[츠바사] : "십중팔구 그럴 거라고 봐. 내가 [주모자]였다면 이 타이밍에서 열이 나는 건 행운이라고 생각할걸"

 

의심하기 어려워지니까 말이죠.

 

[츠바사] : "그렇게 뻗어 있으면 범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인상을 얻을 수 있을 것 아냐. 실은 손가락 하나로 할 수 있는데 말이지"

 

그런가요. 그렇네요.

다른 공유자는 누구에요?

 

[츠바사] : "그건 아직 말해줄 수가 없어"

 

그럴 수가. 저 슬퍼요.

 

[츠바사] : "아마 내일은 알려줄 수 있는 상황이 올 거라고 생각해"

 

그렇군요 기대돼요.

 

그렇지만, 츠바사 군.

츠바사 군.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

 

[츠바사] : "뭐야?"

 

절 안아주지 않을래요.

 

[츠바사] : "무 무슨 소리야?"

 

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밤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무서운데 어떡하죠.

그러니까 안아주세요 절.

그러면 분명히 편히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내일 또 생글생글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절 안아줘요 부탁이에요.

 

[츠바사] : "미안하지만 지금은 그런 소리 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다이스케 간호를 하자 응?"

 

그럴 수가... 절 버리는 건가요.

 

[츠바사] : "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널 얼마나 소중히 생각하는데"

[츠바사] : "생각 좀 하게 해주지 않을래? 이런 건 처음이라서"

 

어머...... 우후후. 그러면 어쩔 수 없네요

우후후~ 다이스케 군 간호하고 올게요

 

그런데

난 왜 주모자의 간병을 하는 거지?

츠바사 군은 신중하네요.

봐요. 이렇게 하면 금방 게임이 끝나는데 말예요.

 

[레이] : "!?"

 

어머나.

 

[마이] : "리리콩 지금 뭐하는 거야......!?"

 

아깝네요. 조금만 더 했으면 게임을 끝낼 수 있었는데.

 

[레이] : "!?"

 

어머? 어머? 어머?

나 왜 레이에게 붙들려 있는 거지.

 

[리리코] : "죄송해요. 잠깐 정신이 멍해서......"

[리리코] : "얼른 해야겠네요. 시간도 없고, 다이스케 군도 힘들어 보이고......"

 

머리가 아프다. 깨어있는지 잠들어 있는지 모를 감각.

나도 그만 자야겠다.

오늘의 가면은 이미 한계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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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쿠라] : "......"

 

눈은 무언가를 보고 있는듯 하지만 보지 않고

귀도 코도 피부도 모두 그래.

어쩔 수 없는 무력감, 그렇기에.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느끼지 않고, 알려 하지 않아.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아무 대책도 없고

아무 것도 모르겠고, 아무 것도 쓸모없고

아무 의미도 없지.

 

불리하고 길은 보이지 않고

비참하고, 원통하게

나홀로.

 

내겐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아무 것도 없다.

분명 해답은 간단했다.

지극히 간단하고 잔혹한 것이었다.

나는 그것에서 달아나기만 했고.

게임이나.

이론이나.

그런 것에 매달려서.

결국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내게는 더 이상 플레이어로서의 가치는 없다.

능력도 사용해 버렸고, 잔지식도 바닥을 보였다.

버림받고... 살해 당해도... 게임에 아무런 영향도 없다.

 

[사쿠라] : "어......"

[사쿠라] : "싫어...... 죽기 싫어......"

 

어쩜 이리도 비참할까.

목숨이 아까워서 눈물까지 흘리다니.

유지가 죽은 것보다도.

다이스케를 상처입힌 것보다도.

자기가 죽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거야?

 

천박하기 그지 없는 나

 

할아버님은 말씀하셨다.

내면의 고귀함을 잊지 말라고.

 

지금 내 모습을 어떨까.

고귀함?

잘난 척하는 것은 외면뿐.

알맹이는 이렇게 작고 약하다.

 

[사쿠라] : "죽고 싶지 않아...... 죽기 싫다구......"

 

그러고 있는 사이에 12시가 된 모양이다.

문이 잠기는 소리가 났다.

앞으로 한 시간 뒤면 누군가는 죽는다.

매일 밤 홀로 떨며 울고 있었다.

그리고 친구가 죽을 때마다 마음 속 한 구석에서 안심한다.

도대체 얼마나 저질스러운지.

도대체 난 얼마나 한심한지.

 

이.

이 자기혐오를 에너지로.

죽음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쓰겠어.

나 자신에게 고백한다.

자신의 한심한 내면을 메모 용지에 한 자 한 자 똑똑이 새긴다.

 

스스로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이 한심함과 마주 선다.

자신을 상처입히기 위해서도. 남을 상처입히기 위해서도 아니다.

상처를 받아서라도 자신과 마주 서는 것.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찾아내는 것.

헛되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것을 찾으며.

중요한 것을. 적고 싶지 않은 것을. 열거한다.

마치 내 삶의 증거마냥.

 

...

......

.........마지막 페이지에.

조금은 망설였지만...... 수신인을 넣었다.

지금 나에게 쏟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적어 넣은 종잇 조각은 그 순간 편지가 되었다.

 

편지는 다른 사람이 읽어주지 않으면

받아주지 않으면 쓸모가 없다.

그래도 나는 수신인의 이름을 넣었다.

새로운 한 걸음을 내딛기 위해서는 진심으로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내 등을 밀어줬으면 하니까.

 

적었다.

괜찮아 나는 할 수 있어.

노트북으로 향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한 걸음을 내딛자.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몸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으니까.

 

0시 55분.

방에 차오르는 연기 속. 나는 몸의 자유를 완전히 빼앗겼다.

이것이 바로 언급되지 않은 룰의 하나.

근이완 가스로 대상의 자유를 빼앗아놓고 [주모자]의 제물로 만드는 장치라는 것을 겨우 이해한다.

기분 나쁜 센스에 내심 고소한다. 게임성과 괴벽과 비합리성이 맞물려 자아낸 추악한 룰.

그렇게나 죽는 것이 두려웠는데.

허둥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과 마주했기 때문.

죽음을 두려워하는 자신을 질책하고 격려하는 자신의 존재를 깨달았기 때문.

 

이윽고 그 한탄스러운 죽음이 다가온다.

우리에게 악의의 씨앗을 심어 성장시키며, 뒤에서 전혀 무해한 존재로 가장하고 있는 [주모자]

그 얼굴을 보고서.

유감스러웠다.

천박한 행세를 하는 것은 그저 장난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루나.

너처럼 그렇게 고고한 마지막을 나도 보일 수 있을까.

 

그때.

나는 깨달았다.

내가 쓴 메모를 [주모자]가 읽고 있다는 사실을.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보지 마!! 보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니까!!

너만은 보면 안 돼!!

 

하지만

그 녀석은 편지의 모든 내용을 핥듯이 읽고 나서.

 

나를 보고서.

코웃음을 쳤다.

악의로 가득찬 눈으로 내려보며.

 

그 다음 [주모자]는 내 편지 한 장 한 장을 메모패드에서 뜯어내어.

갈기갈기. 말 그대로 갈기갈기 찢어서는 바닥에 뿌렸다.

 

눈물이 흘러나왔다.

바라지도 않은 힘에 억눌려 자유를 빼앗긴 채 가장 소중한 것이 망가져가는 것을 지켜만 봐야한다. 그런 심정이었다.

통곡을 할 수도 없고, 발버둥 칠 수도 없다.

무자비한 얼굴을 한 그 녀석이 주삿바늘을 꺼내어 들었을 때도.

머릿속이 까맣게 물든다.

공포라는 이름의 펜이 마음에 엉망으로 낙서를 했기 때문.

 

나는 졌다.

모든 것에서.

맞서려는 마음을 지탱하던 것마저 저리도 간단히 망가졌으니까.

 

그래서 나는.

[주모자]의 바늘이 내 가슴 한 가운데로 향하고.

그것이 곧바로 심장을 찌르고.

순식간에 독이 퍼져, 수 초만에 죽음에 이르를 때까지.

마음 속으로 허무한 절규와 목숨을 구걸해도 된다고 자신에게 허락했다.

 

더보기

[츠바사] : "......"

 

이 녀석들 참 마음에 안 드는군.

어째서 한도 끝도 없이 선의니 우정이니 하는 추악한 명분에 집착하는지.

그 결과 자신의 목을 조르는 꼴이 된다는 것을 알고서 가치관을 버리면서도 어째서 다시 그것에 손을 대려 하는지.

 

그렇기에 나는 절망을 부여한다.

자신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 녀석들이 어차피 절망밖에 없다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

 

조금 위험했다.

이 녀석이 남긴 유서인가? 그것은 이 녀석이 내게 있어 위험한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내용이 남아있었다.

 

각오 끝의 [고발]

 

말인즉슨 수상한 이들의 범위가 어느 정도 줄어들었고, 거기서 더욱 좁히기 위해 목숨이라는 댓가를 지불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이길 잘했다. 조금만 더 방치했다가는 제법 위험했을 것이다.

 

마음을 가다듬자.

유감이구나 유지. [주모자]는 딱히 [배신자]와의 약속을 지킬 필요는 없단다.

거기다 일단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

 

「오늘 0시까지 네가 살아있을 경우, 오늘 밤의 타깃은 사기노미야 사쿠라로 한다」

 

멍청한 놈. 어제의 0시는 어제가 시작된 순간 끝났잖아?

네가 어쩌든 간에 사쿠라는 슬슬 처리할 셈이었거든.

다이스케에 대한 태도의 변화로 보아하니, 이 녀석은 [진단자]라고 보면 되겠지.

이 녀석에게 [진단]을 당했다간 낭패였을 테지만. 사정에 이끌려준 덕에 살았다.

유지에게 내린 명령이 간접적으로나마 효과를 보긴 했군.

그만 돌아갈까.

 

..................남은 적잖은 문제는.

[공유자]의 처분과 모리야마 리리코의 존재네.

 

특히 리리코. 내 이해를 넘어선 광기.파파가 파악하지 못한 트라우마가 있었나?

그게 아니라면 혹시......

 

여튼간에. 막판에 배신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라도 좀 더 친해질 필요가 있나.

속이 다 거북하네. 진짜 마음에 안 든단 말이야.

 

 

다음 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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